지금 유럽에서는 현대미술 축제가 한창이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등이 한꺼번에 열리고 있어 도시에서 도시로 현대미술을 찾아 순례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5년마다 하는 카셀 도쿠멘타의 12회 행사가 16일 개막했다. 베를린 출신의 큐레이터 로저 R 뷔어겔이 총감독을 맡은 이번 행사는 9월 23일까지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카셀을 현대미술의 수도로 자리하도록 하고 있다.
‘100일 간의 미술관’으로 불리는 카셀 도쿠멘타는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피폐해진 독일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전쟁 도발자라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고자 1955년 시작됐다.
현대미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에게 이바지하려는 의도와 함께. 이렇게 출범한 카셀 도쿠멘타는 1972년부터 5년마다 정례화하면서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축제로 향후 5년간의 미술을 열어내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미술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실험적인 작품이 연출하는 어수선한 풍경을 독일인 특유의 간결함과 공간 구성으로 정리해 낸 이번 전시는 미술의 시각으로 본 정의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다. 전시는 서구 중심의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제3세계에서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착취와 수탈의 역사와, 모더니즘의 확대 차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서구 중심 세계화의 모순을 지적한다.
이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모더니즘이라는 가치로 포장된, 세계화에 따른 세계의 양극화 과정과 결과가 제12회 카셀 도쿠멘타의 주제이다. 때문에 개막 첫날부터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모더니즘과 세계화에 대해 제기하는 새로운 미학적 규범은 향후 현대미술뿐 아니라 인문학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현대미술의 장을 ‘교실’로 만들고자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도쿠멘타는 현대미술과 관객 사이의 거리를 다시금 확인하는 모순의 장이 되고 있다.
세계화의 양면성처럼 그 간격은 넓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전시장마다 늘어선 1,001개의 중국 골동의자와 1,001명의 중국인을 초청해 시내 곳곳에서 벌이는 퍼포먼스, 중국 작가들의 대거 출품은 미술의 향연을 빈 정치적 제스처로 읽히기도 한다.
피부로 느끼는 일상의 모순부터 모더니즘과 근대화로 포장되어 실감하지 못하는 모순까지, 모순의 양 극을 보여주려는 이번 도쿠멘타가 스스로 빠진 이런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현대미술은 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까.
글ㆍ사진 카셀(독일)=정준모ㆍ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정준모 미술평론가ㆍ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