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선관위로부터 세 번째 경고 카드를 받았다. 2004년 3월과 지난 7일 선관위가 이미 공무원의 선거 중립의무 준수 위반 사실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이를 계속해서 무시하자 선관위가 또다시 경고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은 앞선 두 차례의 선관위 결정과 큰 차이가 없다. 사법처리가 아닌 행정조치만 가능한 선거중립 의무 준수(선거법 9조) 위반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자신에 대한 가벼운 구두 경고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선관위가 대통령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7일만 해도 선관위는 “앞으로 유사한 사안으로 논란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자제를 요청한다”고 절제된 용어를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7일 대통령에게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요청했음에도 재차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수위를 높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자제 요청’이 아닌 “선거법 준수를 촉구한다”라는 강한 표현도 사용했다.
특히 이전 발표문에는 넣지 않았던 “선관위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기로 결의했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7일 선관위 경고를 받고도 바로 뒷날 원광대에서 ‘위헌’ 운운하며 선관위 결정을 비판한 노 대통령에 대한 선관위원들의 불만과 경고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사전 선거운동 위반 결정 유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선관위는 지난 두 차례 결정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이 사법처리를 받을 수도 있는 선거법 254조 ‘사전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결정은 이번에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다’는 결정을 내린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앞으로 상황을 지켜본 뒤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대통령이 한 번 더 선거법 위반 행태를 보일 경우 사법처리가 가능한 위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노 대통령은 다시 도덕적 타격을 받게 됐다. “재임 기간 중 세 차례나 선거법을 위반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당장 도덕적 레임덕을 불러올 게 뻔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동안 “세계 어느 나라가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금지하고 있느냐”고 반발해왔다. 따라서 권한쟁의심판 청구 등으로 법적 쟁점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또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나라당 유력 주자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역시 대통령 행태를 문제 삼아 선관위 고발을 강행할 수 있다. 이 경우 양측의 충돌이 격화되는 대선 정국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또 노 대통령의 행태를 문제 삼아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친노 세력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친노 진영의 반발을 불러 범여권 내부의 갈등도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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