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 민음사 유서로서 소설 쓰기…패배한 젊음의 기록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일본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ㆍ1909~1948)가 1909년 6월 19일 태어났다.
그의 39년 짧은 생을 관통했던 가장 큰 열정은 자기 파괴의 그것이었다. 일본 패전 후 이른바 ‘무뢰파(無賴派)’라 불린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자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스무살 때부터 네 번의 자살 시도에서 실패하고 다섯 번째 시도로 생을 마감했다. 네 번 중 두 번은 여자와 동반자살을 기도, 여자 둘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그의 문학은 늘 그의 유서였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오쿠노 다케오는 “패전 후의 혼미기를 우리는 다자이 하나에 의지해 살았다”고 말했다. 다자이의 그 무엇이 이런 평가를 낳고 있을까.
“모든 가치관 윤리관이 전도된 패전 후 일본 문학의 첫 페이지에 다자이 같이 전후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걸고 실존에 부딪혀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작가가 놓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인간실격(人間失格)> 을 번역한 김춘미 고려대 교수는 그의 현재적 의미를 말하고 있다. 인간실격(人間失格)>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인간실격> 은 다자이의 마지막 작품으로, 소설로 쓴 자서전이다. 인간실격>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되려 애쓰며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순수하지만 나약한 주인공이 허위적이고 잔혹한 인간들에 배반당하고 광인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은 곧 추악한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것 뿐입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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