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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대전-판화' 전시회/ '판화란 찍는 것' 고정관념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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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대전-판화' 전시회/ '판화란 찍는 것' 고정관념 넘다

입력
2007.06.1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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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것도 판화인가? 설치작품이나 조각 같은데? 어, 이건 찍어내려고 만든 판을 그대로 전시했군. 미완성인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대전-판화> 을 둘러보면 좀 어리둥절하다. 판화의 통념에서 벗어난 것이 많아서다.

‘찍어낸다’는 판화 본래의 특징에 충실한 것도 있지만, 찍어낸 위에 그리거나 붙여서 새로움을 더하다든지, 드로잉을 인쇄하고 오려서 벽화로 설치한다든지, ‘판화의 본질=흔적’으로 넓게 해석해 사물의 본을 뜨거나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개념적인 작업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30~40대 작가 47명의 작품 100여 점을 모은 이 전시는 판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좀 더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목판, 석판, 에칭, 드라이포인트 등 전통적인 판화 기법에 의한 평면 작업에 머물지 않고 드로잉, 조각, 설치 등 다른 영역을 거침없이 껴안고 돈다.

판화의 무한변주라고 할까. 재료나 기법도 아주 다양해서 나무나 돌, 종이 대신 유리나 금속판에 새겨서 찍고, 물감이나 잉크 대신 돌가루를 쓴다든지, 종이죽이나 실리콘으로 사물의 형상을 떠내 입체적인 작품을 만든다든지, 판화만의 특징으로 알던 복제가 불가능한 것도 있다.

흔적을 표현하려는 개념적인 작업에서 가장 멀리 나간 작가는 최성원일 것이다. 검은 재킷을 뒤집어서 옷걸이에 걸고 옷 주머니에 생선과 나무를 꽂아놓은 그의 작품은 판화가 아니라 설치라고 봐야 할 것이지만, 그 옷을 입었던 누군가의 흔적을 드러내는 색다른 방법이라는 점에서 존재의 자국을 남기려는 판화적 열망의 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포개놓은 옷 더미를 석고로 뜬 다음 종이를 대고 두드려 천의 질감과 구김살을 고스란히 박제한 이혜영의 고부조 작품 또한 몸의 흔적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최성원과 이혜영이 기억 곧 시간을 다룬 것이라면, 오연화는 공간을 통째로 떠냈다. 두꺼운 종이를 일일이 잘라서 켜켜이 쌓아 실내 공간 모형의 틀을 만든 다음 실리콘으로 떠서 액자에 담았다. 퇴적암의 지층처럼 여러 겹의 결을 지닌 이 작품은 공간과 시간을 한 덩어리로 압축하고 있다.

전통적인 판화 작업을 내놓은 작가들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상상력을 보여준다. 오토바이를 탄 로보트 태권 V가 철가방을 들고 음식 배달 가는 모습을 찍어낸 성태진, 어린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만화 같은 작품을 내놓은 홍인숙, 외줄타기 하는 고릴라 어깨에 앉은 뚱보 여인이 우스꽝스런 심진섭의 판화는 재기발랄한 감수성을 지녔다.

반면 김영훈의 검은 에칭은 중세 교회의 제단화를 연상시키는 엄숙한 파토스를 내뿜는다. 한없이 깊은 어둠 속에 비닐봉지에 담은 한 조각 파란 하늘을 띄운 정희경의 메조틴트 작품이나, 구름 위로 솟은 빌딩과 하늘을 달리는 고속도로가 등장하는 초현실적 풍경을 그려낸 이주학의 판화는 손작업의 수고로운 흔적과 정교함이 인상적이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한다.

(02)2124-880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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