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사 / 미셀 포쉐 지음ㆍ조재룡 옮김 / 열린터 발행ㆍ360쪽ㆍ1만3,500원
행복은 제가끔의 가치여서 뭐라 정의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하지만 프랑스 리옹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행복이 시대정신이며 일정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고 본다.
원제를 직역한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창세 이래 인류사에서 행복의 성격이 어떻게 변모했나를 살핀다. 주로 시대를 대표하는 문호들의 글에서 당대의 행복론을 추출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저자는 문학, 사상, 역사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보여준다.
신의 계명을 어기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 당한 인류는 그 열락의 상실을 대체할 행복을 갈구했다. 철학에서 행복이 비롯한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를 지나 중세엔 기독교적 죄의식을 뛰어넘은 사랑, 르네상스기엔 지식의 왕성한 섭취와 멜랑콜리한 정신을 지복(至福)에 이르는 길로 여겼다.
카사노바는 “행복이 존재하는 곳은 바로 지상”이라며 육체적 쾌락에 탐닉함으로써 18세기적 행복론을 펼쳤다. 그럼에도 완전무결한 행복에 닿을 수 없다는 절망은 신 대신 예술로부터 구원을 꾀하는 낭만주의 시대를 낳았다. 전체적으로 행복의 근원이 신에서 인간으로, 이성에서 감성을 거쳐 감각으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한편에선 행복을 정치적 원칙으로 삼아 공동체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18세기 프랑스혁명이 결정적 계기였다. 앙시앵레짐(구체제)을 무너뜨리고 진보를 이루려는 시도는 이것이 곧 구성원의 행복과 직결된다는 논리로 명분을 획득했다.
진보(혹은 혁명)를 통해 개인의 인격까지 완성하겠다는 사회적 유토피아 건설 운동은 20세기 초반 러시아 혁명으로 절정에 도달했다가 전체주의로 급속히 변질됐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결국 행복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라고 냉소했고, 프로이트는 “창조자의 계획 속에 인간의 행복은 애당초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숨지었다.
오늘날의 행복은 더욱 질이 나쁘다. 저자는 여러 문명 비평서에서 “여가시간의 산업은 실상 지옥일 뿐인 천국을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불러낸다” “테크놀로지 발전은 서로 다른 수천 개의 개별적 정체성을 구축한 탓에, 함께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구절을 발췌하며 우려를 표한다.
외모지상주의에 젖어 육체를 혹사하는 현대인의 행태를 중세 수도사의 고행에 비유한 소설가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지적이 섬뜩하게 느껴질 즈음, 저자는 “행복을 향해 전진하기 위해 희망으로 급진적 개종”을 할 것을 제안한다. 주체적 세계관, 인격에 기반한 인간 관계, 소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이 실천 내용이다.
그것은 행복의 완성이 아니라 행복에 다가서는 매순간마다 활력을 느끼는 과정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말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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