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베이커리 / 이연 글ㆍ이지선 그림 / 소년한길 발행ㆍ168쪽ㆍ8,000원
전래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계모에 대한 공포’도 이제 많이 가셨다. <콩쥐팥쥐> <장화홍련> 을 읽고 자란 세대들이 쓴 동화책에는 이제 구박하는 새엄마가 없다. 1977년생 이연의 첫번째 동화책 <오후 3시 베이커리> 도 마찬가지다. 오후> 장화홍련> 콩쥐팥쥐>
언제부터 엄마라고 불러야 하느냐는 아이에게 마음 가는 대로 하자며 쿨하게 나오고 아직은 너보다 내 조카를 더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솔직해서 더 친근하다.
이 책은 새엄마,폭력아빠, 동성애 할머니 커플을 등장시켜 가족은 혈연으로 이루어진 집단만을 가리킨다는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열세 살 상윤이는 할머니랑 5년간 부산에서 살다가 아빠가 결혼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다. 공부도 중간 위고 학교에서 크게 말썽 부린 적도 없다.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왕따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씩 엄마도 만나며 즐겁게 지낸다. 무엇보다 적당히 잘해주고 적당히 무심한 듯한 아줌마가 편하다. 아줌마 빵집에 가서 빵 만드는 것도 구경하고 금방 구운 빵을 맛보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딱 하나 사람들의 시선이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 어린 눈길로 보는 것,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고민거리다.
술 취한 아빠에게 매일 맞는 단짝 친구 장훈이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느낀다.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맨발로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게 일상인 장훈이는 멍자국을 달고 산다. 동네 사람들의 쑥덕거림 속에서도 오후 3시면 꼭 팔짱을 끼고 아줌마의 빵집에 나타나는 할머니 커플도 가족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오후 늦게 일어나서 인터넷으로 고스톱을 치다가 저녁밥 준비하는 게 전부인 만화가 아빠는 다른 집 아빠와 한참 다르다. 상윤이는 ‘저 자리에 아줌마가 아닌 엄마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빠와 살 때 엄마는 늘 화난 사람 같아 보였다. 곧잘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고 그럴 때마다 괜히 가슴이 콩콩 뛰었다. 어쩌면 이혼으로 아빠 엄마 아줌마 모두 각각의 행복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이혼율이 높고 한 부모 가정이 많아진 세상에 혈연 관계의 가족만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 아닐까. 계모 또는 계부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은 그늘 없는 아이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또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자기가 진정으로 행복할 때 남에게도 행복을 나눠 줄 수 있는 거란다. 어른이라고 해도 별 수 없어’라고 말하는 아줌마의 말처럼 부모의 희생이 자식의 행복을 담보하는 시대는 지났다.
각자가 가장 행복한 위치에 서는 게 정답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자칫 우울하게 빠질 수 있는 이야기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경쾌하고 유쾌하게 끌어간 것이 돋보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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