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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공항에서', 외로운 자여, 부르자 희망가를

입력
2007.06.1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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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지음ㆍ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발행ㆍ172쪽ㆍ8,500원

올해로 소설가 데뷔 31년째인 무라카미 류(55)는 여전히 시대의 전위에서 문학, 영화, 회화, 사진 등을 아우르는 전방위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1년여 만에 그의 소설집이 번역돼 나왔다.

유학정보지와 문예지에 연재했던 8편의 단편이 실렸다. 술집, 공원, 편의점, 노래방 등 일상적 공간을 배경 삼은 작품마다엔 고도 문명의 주변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내면이 그려져 있다.

모두 1인칭으로 서술된 수록작들은 대개 짧은 시간을 다루고 있다. 편의점에서 식료품을 고르는 동안(<편의점에서> ), 공원에 모인 젊은 엄마 그룹 중 어느 편에 낄까 고민하는 동안( <공원에서> ), 피로연장에서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동안( <피로연장에서> )이 촘촘하게 미분돼 슬로비디오처럼 흘러간다.

천천히 흘러가는 현재는 몽롱하고, 그 사이를 틈입하는 회상은 선명하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도도한 몸가짐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과거에 대한 상념들은 그들의 소외와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공항에서 동행을 약속한 연인을 기다리는 ‘나’는 네살바기를 키우는 이혼녀이자 성(性)매매 여성인 자신에게 찾아든 행운이 못내 불안하다(<공항에서> ). ‘나’가 40대 후반 음반 제작자의 추파를 받고 있는 도자기 가게는 우울증 환자인 남편을 피해 도망치듯 파견 근무를 자원한 곳이다( <역 앞에서> ).

처음 만난 빨강머리, 금발머리 여자애들 앞에서 옛 노래를 부르는 50대 실직자 ‘나’는 대신 생계를 맡은 아내가 술 취해 화장실에서 구토한 지난 새벽을 분노와 연민 속에 떠올린다(<노래방에서> ).

“근대화 물결에서 밀려나 홀로 남은 자에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 희망을 부여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대로 이 소설집 속엔 자기 처지에 지레 절망하는 인물이 없다.

그들은 유학을 결행함으로써 비루한 일상 및 기억과 과감히 결별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현실에 당당히 맞선다. 주인공의 독백에 기대지 않고 세심한 상황 묘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묘파하는 솜씨를 발휘하며 작가는 소외된 존재를 위한 ‘쿨한 희망가’를 부른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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