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흠 지음 / 실천문학사 발행ㆍ368쪽ㆍ9,800원
이문구, 송기숙 등 입심 빼어난 작가들도 서러울 토속어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금은 수몰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전남 장흥군 유치면. 1996년까지 그 곳에는 “자응 유치”라며 자기 고향 땅을 부르던 사람들이 모여 살며 일궈내던 따스함이 있었다.
시인이기도 한 이대흠씨의 첫 소설인 장편 <청앵(靑櫻)> 은 고향 땅이 졸지에 수몰될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수몰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청앵(靑櫻)>
그들의 질박한 일상과 어느날 들이닥친 댐 건설이라는 재앙과 그로부터의 회복 과정을, 어느 문인의 말을 빌면 “세기말 농민들의 여러 전형과 신산했던 애증의 기록”으로 복원해 낸다. 도처에 펼쳐지는 토박이 말의 향연은 우리 문학이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귀한 자산을 재확인시켜 준다.
“아, 막말로 내 땅서 내가 안 나간다는디, 우짜 껏인가?” “그것이 아니랑께, 혼자만 안 나간다고 보툰불로이, 논들은 다 도장 찍어불 것인디?” “머슬 근당가. 다 이녁 난 디서 살고 짚제. 돈 몇 몇 푼에 솔합게 도장을 찍깐?”
‘난봉꾼 만난 과부처럼 여기저기에 속살 같은 꽃을 싸질러 놓은’ 마을에 난리가 났다. 끝까지 싸워보자는 쪽, “직원들얼 ?V 십만 명 데꼬 있는 정주영이도 쪽을 못 쓰는디, 우덜 몇이 보툰다고 눈이나 깐딱”할 턱 없다는 쪽으로 나뉜 마을 분위기가 심상찮다. “우덜이 문 심이 있다고 막을 것이여, 멜갑시 대든 사람만 괴론 법이제.” “땜이 들어설랑께 서울 놈들이 눈이 뻘개 갖고 산 사고 논 사고 그랬제.”
댐 반대 공동 투쟁 위원회, 시위 현장이라기 보다는 파장 무렵의 장터 같았던 첫 데모 등 전반부 분위기는 흉흉하기만 하다. “그 전에 누쓰 보면 재개발한다고 함서 깡패들 동원해 갖고 싹 몰아불드라고…” 댐 건설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첨예한 갈등, 보상을 받아내기 위해 갖가지 꾀를 짜내는 과정에서 내면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과정 등 공동체의 붕괴는 예정돼 있었다.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댐 공사로 인해 생각지도 못 한 땅을 찾는 바람에 “갑재기 재산이 겁나 늘어 부렀다”며 가슴을 쓸어 내린 사람도 있었다. 스산한 풍경 속에 마을 사람들의 넋두리가 어우러져 해원의 별신굿 마당이 펼쳐진다.
‘푸른 앵두’란 뜻의 ‘청앵’은 중국에서 결혼 못 한 처녀의 한을 풀어주는 중국의 풍습을 가리킨다.
문학평론가 장일구씨는 소설 속에 난무하는 비속어에 대해 “제도에 속박된 채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린 이들의 삶을 위무하고 그들의 맺힌 고를 풀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구현하는 서술 전략의 구심”이라고 풀이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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