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일류 원맨쇼여…. 쇼는 핑계고, 물건 팔아 먹으려고 한 거구만.”
12일 오후 5시40분 ‘B씨ㆍN씨 코미디 빅쇼’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앞. 체육관 밖으로 빠져 나온 노인들 1,000여명의 표정엔 허탈함이 가득했다. 원로 코미디언의 원맨쇼에 대한 기대가 주최측의 얄팍한 상술로 무너져 내린 탓이다.
유명 상조회사(장례 서비스 대행업체) Y사가 마련한 이 공연은 11, 12일 이틀간 하루 3회씩 행해졌다. 그러나 B씨(11일)와 N씨(12일)의 출연은 어르신들을 유혹하는 미끼에 불과했다. 실제 목적은 회원 모집을 위한 계약 권유와 상품 판매였다.
12일 오후 2시30분 공연을 지켜본 박모(68)씨는 “N씨는 성대모사와 입담을 잠깐 펼치다 30분도 안돼 퇴장했다”며 “북한예술단이 무대에 오른 시간을 합해도 공연은 1시간밖에 안 됐다”고 말했다. 나머지 2시간은 수의(壽衣)와 건강목걸이ㆍ팔찌 세트 홍보와 판매, Y사의 장례서비스 계약 권유 등으로 채워졌다.
물건을 팔기 위해 Y사는 갖가지 수단을 동원했다. “선착순 15명만 계약할 수 있다”더니 “20명, 30명까지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계약을 재촉했다. ‘10개월 할부 가능’을 강조, 어르신들의 눈을 흐리며 충동 구매를 유도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목걸이 세트가 2만9,800원밖에 안 하길래 싼 맛에 샀다”는 말이 들렸지만 가격은 29만8,000원이었다.
10개월 할부라는 사실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비실대던 사람이 건강목걸이를 걸자 마자 무거운 사람을 번쩍 드는 촌극도 연출됐다. 남모(52ㆍ여)씨는 “계약 강요나 강매는 없었지만 어르신들을 상대로 판매를 교묘히 유도했다”며 씁쓸해 했다.
행사 내용과 달리 업체측에서 나눠준 관람권은 영락없는 ‘무료공연 초대권’이었다. 뒷면 하단에 깨알 같은 글씨로 ‘관혼상제 예법을 위한 홍보공연’이라는 설명이 고작이었다. 회원 모집이나 상품 판매 등의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건강식품이나 약 등은 절대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박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인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유는 단 하나, 마지막에 공짜로 주는 휴대용 라디오를 받기 위해서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이모(37)씨는 “양탄자를 공짜로 준다는 걸 미끼로 240만원에 달하는 수의 값을 현찰로 요구하기도 했다”며 “‘사기성 공연’에 유명 연예인들이 쫓아다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상품을 강제로 사게 한 건 아니기 때문에 공연 후 판매한 상품의 진품 및 적정 가격 여부 등을 따져 봐야 위법 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며 “무료 공연이 상품 판매의 장으로 변질돼 사회적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보다 많은 사람을 모으려다 보니 ‘연예인 쇼’에 초점을 맞춰 관람권을 제작하고 홍보했다”며 “강매 등 위법 행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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