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위한 감동 이벤트를 준비하고 D-day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지난해 10월, 하필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예기치 못한 막강한 변수가 등장하다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어느 새 연애만 7년.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 준 사람,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그저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나를 기다려 준 사람. ‘그녀에겐 꼭 특별한 프로포즈로 내 마음을 전하리라’고 마음먹은 제가 떠올린 것은 여의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세계불꽃축제’였습니다. ‘화려한 불꽃놀이와 함께 그녀와의 행복한 앞날을 약속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리리라. 불꽃같이 화려한 새로운 시작을 그녀와 함께 열리라’ 한껏 꿈에 부풀어 있었지요.
그 때 제게는 국가 안보나 세계 정세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63빌딩 59층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와인바의 전망 좋은 창가 자리를 예약하고 그녀에게 고백할 시간만 기다리던 제 머리 속에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불꽃축제 무기한 연기’가 신문지상의 그 어떤 헤드라인보다 더 큰 글씨로 새겨졌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그녀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차남인 저였지만 우리는 이미 양가를 오가며 결혼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 없던 사이였습니다. 종교 문제도 극복한 우리 사이를 북한의 핵실험이 막다니요.
결국 며칠이 지난 후 저는 소박하게 그녀에게 청혼했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던 중 “남산 쪽에 맛있는 갈비집이 있다”는 말로 그녀를 남산으로 이끌었고 갈비집을 찾다 말고 케이블카를 타자는 저의 느닷없는 요구에 그녀는 아마도 저의 계획을 눈치 챘었겠지요. 63빌딩 대신 남산N타워 레스토랑에서 반지를 주고 청혼했습니다. 정말 너무 소박해서 미안한 프로포즈였지만 그녀는 무척 반갑게 웃어 주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고 또 다른 마음 한편에는 자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보영아,
여자에게 관심을 안 보인다며 동기들에게 놀림 당하던 나였지만 너만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였어. 미술대학 선후배 사이로 우린 과제도 토론도 늘 함께 했었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네가 얼마나 예뻐 보였는지 모른다. 난 그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프로포즈를 준비했단다.
‘바른생활맨’으로 불리던 나는 묵묵히 널 지켜보기만 하는데 다른 남학생들이 너에게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칠 때면 어찌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던지. 물론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그래도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널 다른 사람에게 뺏길 수는 없었거든.
4월 7일에 올린 우리 결혼식이 난 아직도 꿈처럼 느껴진다. 얼마 전엔 결혼 한 달을 기념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지만 이런 소소한 이벤트로 내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있을까. 프로포즈는 소박했으나 그 만큼 앞으로 더 잘할게. 우리 잘살자.’
장광현(32ㆍ탑앤와이즈 웹디자이너)·조보영(29ㆍ한경비즈니스 편집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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