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남자들이 모두들 꽃미남으로 변하고 있을 때, 여전히 남성적인 우직함을 내세우는 배우가 있다. 역설적으로 요즘엔 그런 남자들이 더 매력과 마력을 지닌다. 최근 들어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하정우(29)가 그렇다. “어느날 아침에 깨보니 스타가 돼있지 않더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근데 저도 무명시절이 꽤 길었었거든요. 나름대로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배우에요.(웃음)”
하정우가 스타덤에 오른 길은 남들과 조금 다르다. 크고, 외형만 그럴 듯한 영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저예산, 비상업영화들을 통해서였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 , 김기덕 감독의 <시간>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 은 앞서 둘과 같은 계열이면서도 또 다른 지점에 서있다. 이른바 ‘작가주의적 상업영화’인 셈인데, 그런 면에서 하정우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계기가 됐다. 두번째> 시간> 용서받지>
“캐스팅 제의를 받고 나서 극중인물인 김지하처럼 되려고 노력했어요. 지하라는 인물은 뉴욕에서 혼자 살아가는 불법이민자죠. 사회적으로 볼 때 아웃사이더이자, 낙오자에요. 뉴욕으로 가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혼자 다녔어요. 지하가 혼자 살듯이 혼자 지내려고 노력했죠. 혼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등산도 다니고, 때로 사람들과 섞여 식당에 가더라도 직접 음식을 나르고 그랬습니다. 지하의 몸은 노동으로 만들어진 굳은 살인데, 그렇게 보이려면 똑 같은 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배우가 극중 캐릭터와 자신을 동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하정우의 ‘메쏘드 연기법’은 조금 더 지독한 데가 있다. 그건 그가 얼굴과 외모로 어느 날 갑자기 반짝 뜨게 된 것이 아니라, 중앙대 연극학과 출신으로 연기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것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여기엔 아버지이자 중견 인기 탤런트인 김용건씨 역할도 컸다.
“아버지 영향은 절대적이었죠. 아버지는 연기에 대해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신 편이에요. 그보다는 연기자는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하고 생활태도를 강조하는 편이죠.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부> 의 알 파치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배우보다는 영화인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연기도 하고 연출이나 때로는 제작도 하는, 궁극적으로 필름메이커가 되고 싶은 게 꿈입니다.” 대부>
<두번째 사랑> 은 사실 1년 전에 끝낸 작품이다. 1월 미국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등 오히려 바깥에서부터 주목 받느라 국내개봉이 늦춰져 왔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별 베라 파미가의 상대역으로 유창한 영어실력도 자랑한다.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고, 최고의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내용이 굉장히 한국적인 소재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진정한 마음은 세상 누구에게도 똑같은 느낌의 얘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게 마음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함께 보는 작품입니다.” 두번째>
●두번째 사랑문득 찾아온 사랑… 여인의 자아찾기
성공한 한국계 남편 앤드류(데이빗 맥기니스)와 사는 소피(베라 파미가)는 그렇게나 원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자 절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불임센터에서 정자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한국계 불법이민남성 김지하(하정우)를 만나 자신도 놀랄 제안을 하게 된다. 임신을 할 때까지 자신과 관계를 맺어주면 일정한 돈을 지불하겠다는 것. 생활고에 시달리며 불안한 날을 보내던 지하는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고 둘은 ‘위험한 관계’를 시작한다.
철저하게 통속성의 외피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진아 감독은 전작인 <김진아의 비디오일기> 나 <그집 앞> 처럼 이번에도 특유의 여성주의적 관점을 영화 속에 풀어 놓는다. 기묘한 일이 계기가 되긴 하지만 극중 여주인공이 성공한 남편과 새로 연인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남자와 삼각축에서 찾으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의 자아찾기를 신파 멜로의 틀로 얘기하는 작품이다. 그집> 김진아의>
하버드에서 한국영화학을 가르치며 뉴욕 인디영화계에 인맥을 넓힌 김진아라는 재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작품이다. <인어공주> 를 제작한 나우필름과 미국독립영화사 박스3가 손잡고 만든 실질적인 최초 한미합작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순제작비는 30여억원으로 반반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특히 미국자본을 모범적으로 끌어들인 사례로 한국영화 제작방식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할 것으로도 보인다. 인어공주>
/영화저널리스트
배우한 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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