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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法'에 막힌 고화질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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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法'에 막힌 고화질방송

입력
2007.06.1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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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고은경(39ㆍ서울 행당동)씨는 고화질(HD) 방송을 보기 위해 큰 맘먹고 42인치 LCD TV를 구입했다. 그런데 일반 TV처럼 아파트 거실 벽에 붙어 있는 단자에 TV 안테나 선을 연결했으나 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TV 고장인 줄 알고 제조업체에 문의한 결과 케이블TV를 신청하거나 별도의 안테나를 구입해 설치하지 않으면 HD방송을 볼 수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들었다.

디지털TV를 구입하고도 고화질(HD) 방송을 볼 수 없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관련 법규의 미비로 TV 시청에 반드시 필요한 공동 안테나(MATV)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HD 방송을 보려는 시청자들은 강제로 거둬가는 TV 수신료외에 별도의 요금을 내고 케이블TV를 신청해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동주택에서 사는 시청자들은 LCD, PDP 등 고가의 디지털TV를 구입해도 공동 안테나 설비를 이용할 수 없어 HD 방송을 시청할 수 없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정보통신부령 36호로 발효된 '텔레비전 공동시청 안테나시설 등의 설치기준 규칙'(TV공시청 규칙)이라는 낡은 법규 때문에 비롯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아파트 등 공동건물은 공동 안테나를 설치한 뒤 안테나선을 각 가정에 배분하고 있다. 따라서 TV를 구입한 뒤 벽에 붙어있는 단자에 안테나 선을 꽂으면 TV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에서 점점 편성비율을 늘리는 HD방송은 이 같은 방법으로 볼 수가 없다.

안테나에서 HD 신호를 받아서 가정에 보내주는 디지털신호장비(DSP)가 없기 때문이다. KBS 관계자는 "DSP를 설치하거나 증폭기를 달아야 아파트에서도 케이블TV를 신청할 필요없이 공동 안테나로 HD방송을 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통부에서 TV공시청 규칙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TV공시청 규칙은 정통부에서 HD방송이 등장하기 이전인 1997년에 한 번 개정한 뒤 10년 동안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HD방송 수신을 위한 설비 기준을 두지 않아 건축업자들이 건물을 지을 때 DSP나 증폭기를 애써 설치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케이블TV 사업자들이 난시청 해소를 명분으로 아파트 등의 공동 안테나와 선로를 케이블TV 수신용으로 독점한 채 일반 방송과 HD방송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상당수 공공주택이 케이블TV의 선로 독점 때문에 케이블TV를 끊으면 아예 TV를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통부는 2012년까지 모든 TV를 디지털 방식으로 교체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장 시급한 법규 개정은 외면한채 가전업체들의 TV판매만 돕는 꼴이다.

정통부가 요지부동인 이유는 방송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팽팽히 맞서있기 때문이다. 지상파와 위성방송은 TV공시청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케이블TV 사업자들은 가입자 및 수익감소를 우려해 이를 반대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방송 사업자들에게는 안테나 장악이 방송 사업의 향배를 좌우한다"며 "특정 사업자를 편들 수 있는 TV공시청 규칙 개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TV로의 전환이 대세이고, 재난 방송 등 지상파 방송의 공공재 역할이 중시되는 점을 감안하면 더 이상 TV공시청 규칙을 미룰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통부 관계자는 이에대해 "이달 중 TV 공시청 규칙을 개정해 새로 짓는 아파트 등에는 HD 방송 수신을 위한 설비를 마련토록 하고 기존 아파트들은 TV수신환경 개선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점차 고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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