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통에 지렁이를 넣어서 키우면 음식물 쓰레기도 줄어들고 냄새도 덜 난다고 하던데요?”
청도초등학교 6학년 이수인(12ㆍ사진)양은 경북 청도군에 있는 다세대주택에 산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여러 가정이 한데 모여 살 때 매우 민감한 문제 중 하나다.
아니나 다를까, 이양은 이웃이 확실히 처리하지 않고 대충 버려둔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짜증이 날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집 안까지 몰려드는 파리들을 잡느라 괜한 고생을 하곤 해요. 우리 집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둘러 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쓰레기통 밖으로 오물이 흘러나와 더러워진 모습, 주변을 웽웽거리는 파리 떼 등에 얼굴이 찌푸려진다.
그 옆을 지날 때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건 물론이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깨끗하게 관리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관상 보기에 안 좋은 점은 둘째 치더라도, 음식물 쓰레기 양이 너무 많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쓰레기통 주변엔 세균이 득실댄대요. 병균을 옮길까 봐 걱정도 돼요.” 자연스레 ‘음식물 쓰레기통 관리’는 이양의 관심사가 됐다.
이양은 얼마 전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지렁이는 흙과 함께 음식 찌꺼기를 먹고 부드럽게 소화해서 다시 내놓아 흙을 기름지게 만드는 친환경적 동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지렁이가 ‘가정용 음식물 쓰레기 처리법’에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정작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제법 큰 음식물 쓰레기통에 지렁이를 넣어둔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양은 ‘지렁이가 숨쉬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지렁이 잡기 놀이를 하던 기억은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 해결사’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렇다면 시범적으로 아파트 단지 몇 군데를 정해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키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도대체 몇 마리를 넣어야 하는지, 쓰레기 양 줄이기나 세균 번식 억제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악취도 함께 제거될지 등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볼 만하다는 게 이양의 생각이다. 이양은 “환경 보호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냐는 질문에 수줍은 듯 “그냥 초보적인 관심만 약간 있을 뿐 잘 모른다”고 답한 이양은 장래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다.
이양은 지구가 더 이상의 오염 없이 잘 보존돼야 미래의 아이들도 건강히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어른들을 향해 ‘따끔한 한마디’를 건넸다. 당장은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의 파리 떼 쫓기가 너무 귀찮은 게 발단이 됐지만 이를 계기로 많은 것을 배워 기쁘다고도 했다.
이양은 12일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지렁이 키워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 '지렁이 화분' 분양 확대해야
“지렁아, 밥 먹어라.”
12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한 다세대주택 옥상. 여섯 살 유민이와 할머니가 텃밭 한 켠에 흙을 파고 음식물 쓰레기를 조심스레 묻는다. 꿈틀꿈틀 흙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지렁이를 발견하자 유민이가 ‘꺄르르’ 환호를 터뜨린다. “참 싱싱하게도 자랐네.” 할머니는 텃밭에 무성히 자란 배추, 상추를 바구니에 담으며 저녁 찬거리 걱정을 던다.
이곳은 서울시와 환경단체 ‘에코붓다’가 2005년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한 퇴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공동퇴비장을 설치한 공동주택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은 지렁이 배설물을 텃밭의 퇴비로 활용, 각종 유기농 채소를 가꾼다. 주부 최윤희(35)씨가 에코붓다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지렁이 화분’을 분양 받아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자 입소문이 퍼져 전체 주민 10가구가 참여했다.
주민들은 청결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시큼한 냄새와 파리 떼로 여름철 골치거리 1호였던 쓰레기통이 무용지물이 됐다. 텃밭에서 가꾼 유기농 채소를 공짜로 얻는 것은 물론, 아이들에겐 지렁이를 이용한 자원재활용 등 생태체험 공간이 된다.
지렁이 퇴비화 운동은 에코붓다와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에서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02년 지렁이 퇴비법으로 자체 쓰레기 배출량을 10분의 1로 줄인 에코붓다는 2004년 108가구에 지렁이 화분을 분양했다.
2005년부턴 서울시와 공동으로 중구 명동 계성여고와 남현동 공동주택 등을 시범단지로 선정, 지원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연간 1만1,464톤, 생활 폐기물의 23%에 달한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된 이래 생활 폐기물은 크게 줄었지만 음식물 쓰레기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정부와 지방자체단체는 다양한 자원재활용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자원공사는 ‘음식물 우수 재활용 퇴비 및 사료 공모전’을 통해 친환경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업체를 선정한다. 지난해의 경우 울산에서 주민지원협의체를 구성, 지렁이 배설물로 퇴비를 생산해 주민에게 이익금을 환원한 업체가 수상했다.
그러나 주민의 자발적 참여 부족 등으로 자원재활용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환경에 대한 사회적 관심 부족과 지렁이에 대한 혐오감 등이 지렁이 퇴비화를 지연시키고 있다. 경기 여주군은 96년 25억원을 들여 2,600여평 규모의 지렁이 퇴비장을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했다.
하지만 수익이 적고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르자 지난해 문을 닫았다. 에코붓다 이성미 팀장은 “자원재활용과 함께 배출량 감소를 목표로 해야 한다”며 “음식쓰레기 종량제를 도입하거나 지자체가 배출량이 적은 업체에 지원을 해주는 등 제도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가정이 삼박자를 이뤄 친환경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활용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쿠바는 정부가 음식물 쓰레기를 전량 수거해 농산물 퇴비로 활용, 유기농산물 수출경쟁력을 높인다. 미국 캐나다 호주는 일반인들이 용도와 크기, 디자인에 따른 맞춤형 지렁이 상자를 상점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거리 곳곳에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지렁이 상자가 놓여 있다.
일본과 영국은 발생자 처리 원칙을 세워 각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토록 하고 있다. 대신 지자체가 각 가정에 전동식 또는 지렁이 등 미생물을 이용한 퇴비화 장치 설치비를 지원한다.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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