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국무총리 산하 국가이미지위원회는 국가이미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가이미지 지표를 개발하겠다며 거창하게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지금까지 1년7개월이 지나도록 정부에서 ‘국가이미지 지표’에 대한 후속 조치가 나왔다는 소식은 없다.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최근 담당 공무원은 “자리를 맡은 지 얼마 안돼서 잘 모르겠다”며 “그게 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관련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국가이미지 지표를 만들었다가 점수가 낮게 나오면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 흐지부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중구 난방 국가 이미지 정책
국가 이미지 정책을 다루는 정부의 이 같은 예만 봐도 한국의 “시스템 부재”가 여지없이 확인된다. 주먹구구식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다보니, ‘거창한 계획’만 나왔다가 후속 조치는 ‘감감 무소식’이 된 것.
국가 대표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 자체도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다. 정부가 2002년부터 국가브랜드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를 설정, 홍보해온 상황에서 최근 산업자원부는 ‘프리미엄 코리아’, 문화관광부는 ‘한(韓) 스타일’, 한국 관광공사는 ‘스파클링 코리아’ 등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관련 부처들이 다양하게 나서 작업하는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각 브랜드간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관성을 발견하기 어렵고 이를 통합 관리해야 할 관련 기관도 1년에 한 두차례 회의를 갖는 것이 고작이다.
원칙과 시스템이 없으면 결국‘졸속ㆍ전시행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문화관광부가 2011년까지 2,700억원을 투입해 한식 한복 등 6개 전통문화를 ‘한(韓) 스타일’ 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올 초 발표했지만, 정작 전통문화 분야 종사자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화연대의 한 관계자는 “전통 문화를 세계화하려면 전통문화가 실력을 갖출 수 있는 토양 자체를 지속적으로 성숙시켜야 하는데, 이에 대한 예산은 오히려 깎고 있는 실정”이라며 “결국 이벤트성 행사 몇 번 하고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 사회 곳곳 시스템 부실
이 같은 시스템 부재가 비단 국가이미지 정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 초등학교 소방체험 중 발생한 학부모의 어이없는 추락사, 경의선 가좌역 지반침하 사고, 여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터지는 학교 급식 식중독 사고 등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각종 사건 사고 역시 우리의 시스템 부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졸속ㆍ주먹구구식 대응이 결국 부실 사고를 초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살고있는 한 외국인은 “초등학교 추락사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한국에서 아직도 벌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90년대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로 초래된 부실한국의 이미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세계화의 물결 속에 글로벌 스탠다드가 강조되면서 선진 시스템이 점차적으로 도입됐지만, 아직 뿌리를 내렸다고 보기는 극히 어려운 상태다.
공정한 시스템 정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사 부문만 해도 참여정부 들어 CEO 공모제나 개방형 직위 확대 등이 도입됐지만, ‘연고주의ㆍ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과수 폭포 외유로 거센 비난을 받은 공기업 감사 대부분이 정치인 출신의 보은ㆍ낙하산 인사들이었고, 최근 이뤄진 금융기관 CEO 공모에서도 인사 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아 ‘허울 뿐인 공모제’란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 결국 연고ㆍ정실주의에 따른 부패
특히 심각한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연고ㆍ정실주의로 기울게 돼 결국엔 부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2006년 국제투명성 기구의 부패인식 지수(CPI) 조사에서 한국은 42위로 수년째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 서울시립대 반부패시스템 연구소가 지난해 중앙 부처 및 서울시 구청 공무원 3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의 90% 이상이 우리 사회의 연고·온정주의가 여전히 강하다고 답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청탁이나 연줄을 사용하겠다는 응답도 53%에 달했다.
반부패시스템연구소 임병연연구원은 “협력을 중시하는 농경사회의 문화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그릇된 패거리문화로 변질됐지만 정작 사회내에서는 그 같은 유착구조가 잘못된 것이라는 문제의식조차 희박해 보인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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