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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CEO '장수 시대'

입력
2007.06.1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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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열리는 코리안리 주주총회의 안건 중 하나는 이사 선임의 건이다. 박종원 대표이사 사장의 이사 재선임을 통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연임을 승인하기 위한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통과는 확정적이다. 네번째 연임. 단일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로는 최고 기록이다.

금융계 장수(長壽) CEO들이 늘어나고 있다. 3연임, 4연임에 성공하며 길게는 10년 이상 대표이사 권좌를 유지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굳건히 할 태세다. '금융회사 CEO = 단임'공식도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올 들어 연임에 성공했거나 연임이 확정적인 금융계 CEO만 줄 잡아 10여명에 달한다. 단기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만의 색깔을 담은 장기적 안목의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견제 장치 없는 '경영자 지배'에 대한 우려도 뒤따른다.

"라응찬 없는 신한금융지주, 김승유 없는 하나금융지주를 상상할 수 없다"는 한 금융인의 평가처럼,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계 장수 CEO의 대명사다.

라 회장은 신한은행장 3연임, 지주회사 회장 3연임 등을 통해 17년째 '권좌'를 지키며 하루하루 금융계 최장수 CEO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김 회장 역시 단자회사(한국투자금융)를 하나은행으로 탈바꿈시킨 뒤 하나은행장 3연임에 이어 지주회사 회장 자리까지 오르며 11년간 하나금융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두 그룹에서 라 회장과 김 회장이 차지하는 위상은 전문 경영인 차원을 넘어 '오너'수준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주주 눈치 보기에 급급해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여타 금융회사 CEO와 달리, 후계 구도까지 만들어갈 만큼 절대 권력을 행사한다.

다른 금융회사와 달리 '신한 문화' '하나 문화'가 확고히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두 CEO의 성과로 대변된다. 각각 '재일교포 주주' '한국투자금융 인맥'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밑거름이 됐지만, 강력한 리더십(라 회장)과 탁월한 장사꾼 기질(김 회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박종원 코리안리 사장은 '낙하산 CEO'에서 '단일 금융기관 최장수 CEO'로 거듭난 경우다. 옛 재무부 이재국 등에서 잘 나가는 경제 관료였던 그가 25년 공직 생활을 접고 98년 대한재보험(코리안리의 옛 이름) 사장 자리로 옮겼을 때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현대로 "그대로 가면 1년 안에 공적자금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던 회사는 10년새 환골탈태했다. 직원의 30%를 구조조정하는 등 끊임 없는 경영 혁신을 통해 아시아 최고의 재보험사로 끌어 올렸다.

전북은행의 꾸준한 순익 증가에 힘입어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올해 3연임을 확정한 홍성주 전북은행장, 외환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2000년 이후 수협 신용부문 사령탑을 지키고 있는 장병구 수협은행 대표, 98년 이후 증권가 최장수 사장 자리를 유지해 온 유정준 한양증권 사장 등도 '장수 CEO' 대열에 합류해 있다.

단명 CEO에 익숙해온 금융계에서 이들 장수 CEO를 바라보는 시각은 비교적 우호적이다. 단기 실적 추구를 위해 무리한 영업으로 부실을 초래하거나, 3년 주기로 CEO가 교체될 때마다 전략이 수정되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수 CEO도 결국 '단기 수익성'으로 대주주의 입맛을 충족시킴으로써 연임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편에서는 오너 못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경영자 지배'의 폐해가 나타나는 금융회사도 적지 않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원은 "분명 장단점이 있지만 이제 겨우 장수 CEO 풍토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 만큼 긍정적 효과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단, 장기 집권하는 CEO들을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 이사회 기능 활성화 등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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