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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암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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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암태도

입력
2007.06.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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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으로 소설로 민중운동의 상징 돼송기숙 / 창작과비평사

암태도 소작쟁의의 지도자 서태석(徐邰晳)이 1943년 6월 12일 58세로 사망했다.

암태도는 목포 서쪽 28.5㎞, 서남단 해상 끝머리에 위치한 전남 신안군의 섬이다.

송기숙(72)의 장편소설 <암태도> 의 묘사에 따르면 1920년대 당시 암태도-목포 뱃길은 대여섯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페리로 1시간여면 닿는다. 1923년 9월부터 1년간 계속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 민중운동사의 획을 그은 항일운동이다.

당시 일제의 저미가정책으로 수익이 감소하자 지주들은 소작료를 8할까지 올려 보충하려 했다. 서태석의 주도로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한 농민들은 대지주 문재철에게 소작료를 논 4할, 밭 3할로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문재철이 이를 묵살하자 농민들은 소작료 불납동맹을 벌이고 지주 공덕비를 부순다.

연이은 소작인 습격과 구속, 지주 편을 드는 일본 경찰에 격분한 농민들은 400여명이 목포로 가 농성과 아사동맹(단식투쟁) 끝에 소작료를 4할로 내린다는 약정을 받아냈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국내 최초의 논픽션 작가로 꼽히는 박순동(1920~1969)이 1969년 이를 다룬 논픽션을 발표하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논픽션은 1970년대 대학가ㆍ운동권의 필독문건으로 꼽혔고, 소설가 송기숙(72)은 1979년 ‘창작과비평’에 <암태도> 를 연재했다.

이 소설로 암태도라는 지명은 1920년대의 농민운동을 1970~80년대의 민중운동에 이어주면서, 저항적 민중운동을 상징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항일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겪은 서태석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신안군 압해도의 논둑길에서 벼포기를 움켜쥔 채 죽었다고 전한다.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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