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했수?” “네, 할머니.” “아이는 몇인가?” “셋이에요.” “부모는 계시고?” “모두 돌아가셨어요.” “아이고 불쌍해라. … 그런데 결혼은 했수?” “네.” “아이는 몇이나 두고?”
치매 노인은 조금 전에 했던 이야기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고 똑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오래 전 기억은 정확히 되살리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학습과 기억이 어렵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신경전달 물질의 과잉분비 때문이라는 ‘신호 대 잡음’ 가설이 등장하고 있다.
인제대 뇌과학기술연구소 정설희(여) 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생화학자 및 분자생물학자 연맹(FAOBMB) 학술대회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사람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습하는 것은 뇌 신경세포가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하고 전달하는 과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신경세포는 신경전달물질이 들어오면 크게 흥분하고, 신호가 없을 때는 차분한 상태로 유지된다.
그런데 ‘신호 대 잡음’ 모델은 아무 정보가 없을 때에도 뇌세포가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해 지속적으로 잡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진짜 정보자극이 있어도 신경세포가 이를 신호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는 뇌 신경세포를 치매 상태와 비슷하게 조작(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 유전자 과발현 또는 돌연변이)한 뒤 신경전달 물질의 일종인 글루타메이트 분비량을 측정한 결과 자극이 없을 때도 과잉분비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형적인 치매인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은 흔히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독성 단백질이 달라붙어 신경세포가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경세포가 죽기 전에도 기억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츠하이머가 발생하는 초기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도 거의 모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뇌 신경세포가 만성적으로 신경전달 물질에 노출되면, 지속적인 흥분상태에 시달리다가 쉽게 손상되고 만다.
한번 손상된 뇌 세포는 되 살아나지 않기 때문에 알츠하이머와 같은 병은 초기 증상을 파악해 더 이상 진전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의 치료전략으로 여겨진다.
정 교수는 “치매의 초기 증상인 기억장애의 원인을 밝혀낸다면 파킨슨병이나 루게릭병과 같은 다른 퇴행성 뇌질환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는 가장 널리 연구돼 온 뇌 질환이지만 정확한 발병 메커니즘과 치료법이 아직 나와있지 않다. 신경전달 물질에 대한 연구는 초기 알츠하이머를 공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만, 널리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환자에게서 뇌척수액을 추출해야 한다는 점이 난관이 되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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