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층에서 태어나 위대한 작가로 성장한 안데르센은 그 삶과 작품 모두가 그야말로 놀라운 스토리입니다.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인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지요. 한국의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이번 안데르센과의 만남이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달 25일 코펜하겐에서 만난 폴 백(Poul Bache) 덴마크 문화예술국 사무총장은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전(展) 한국 전시에 벅찬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안데르센은 세계인 누구나 공감하는 덴마크의 대표적인 문화상품. 더욱이 이번 한국 전시는 덴마크가 국가사업으로 추진해온 이 전시가 유럽권을 넘어 본격적인 세계순회에 나서는 첫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인 2005년 덴마크 정부가 설립한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재단’의 상임위원을 맡았다.
덴마크 문화예술국이 자리 한 한스 크리스찬 대로변에는 안데르센의 동상과 함께 코펜하겐 시청을 비롯한 각종 관청과 정부기관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세종로에 해당하는 코펜하겐의 최중심가. 거리 이름만 봐도 안데르센에 대한 덴마크 국민들의 애정과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과 교감하는 놀라운 경험
실제로 덴마크 정부는 2005년을 ‘안데르센의 해’로 정하고 2억3100만 크로네 (DDK : 덴마크 기준 통화), 한화 385억여원의 예산을 각종 기념사업에 쏟아 부었다.
안데르센 생가 재복원과 세계적 팝 가수 티나 터너의 콘서트, 연극, 무용, 오페라, 도서 출간, 영화ㆍ드라마 등 문화의 전분야에 걸쳐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벌였다.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전은 이 가운데서도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였다.
미국의 자연사 박물관과 홀로코스트 뮤지엄, 빌 클린턴 대통령 도서관 등을 설계한 세계 최고의 전시 디자이너 랄프 아펠바움이 설계와 구성을 총지휘, 환상적인 꿈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아펠바움은 첨단 조명과 영상, 이미지 등을 절묘하게 조합한 ‘상상공간’을 새롭게 창조해 냄으로써 관람객들이 그 안에서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새끼’ 등 친숙한 동화의 주인공들과 온 몸으로 교감하는 행복하고도 경이로운 경험을 하도록 했다.
2005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덴마크 왕실의 별궁 로젠버그성에서 열린 전시는 인근 국가의 관광객들까지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그 해 봄 영국 에딘버러에서도 기록적인 관람객을 동원한 이 전시는 이번 한국 행사가 끝나는 대로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1년간 전시가 예약돼 있는 등 본격적인 세계투어 길에 오른다.
●감동적인 안데르센의 삶도 재현
동화 만큼이나 안데르센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낸 그의 삶 자체이다. “안데르센은 구두수선공인 아줌마와 정신병원에서 빨래를 해주던 엄마 아래서 자라서 맞춤법을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었어요. 13살 때 후원자로부터 한 달의 집세와 식비를 지원받아 코펜하겐으로 상경한 뒤 위대한 작가가 돼 62세 되던 해 고향 오덴세의 명예시민으로 추대 됐어요.
그때 수많은 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나와 그를 환영했죠.” 가난과 역경, ‘분수를 모른다’는 친구들과 주변의 질시를 이겨내고 끝내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위대한 동화작가가 된 그 스스로가 바로 아름다운 백조로 다시 태어난 미운 오리새끼였던 셈이다.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 한국전시에는 이러한 안데르센의 삶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유품들도 전시돼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인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안데르센의 여행용 트렁크와 실크 모자, 자작시를 써 넣은 부채, 종이 오리기 작품 등이 포함된 25점의 유물이 그것. 환산 가치로만 해도 10만 크로네, 한화로 약 168억에 달하는 덴마크의 ‘국보급’ 유물이다. 그런 만큼 유물의 한국 반입과 전시장 설치는 오덴세시에서 직접 파견한 큐레이터가 담당하게 된다.
코펜하겐, 오덴세=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어른들도 함께 보세요
‘상상공간-안데르센의 삶과 놀라운 이야기’ 전은 단순한 어린이 대상의 전시행사가 아니다. 유물과 첨단 제품, 한 위대한 인간의 삶과 동화라는 판타지의 조화를 통해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한 복합 전시다.
관련 전문가들은 “가벼운 볼거리, 놀거리 위주의 기존 어린이 전시의 개념과 틀을 크게 확장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형태의 전시 콘텐츠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만 하다”고 이번 전시의 구성과 내용을 극찬하고 있다.
이는 물론 세계적인 거장 랄프 아펠바움(사진)의 재능에 온전히 힘입은 것이다. 자칫 무겁고 딱딱한 유품전이나, 거꾸로 소란한 놀이공간으로 흐르기 십상이던 전시가 그의 손끝을 거쳐 품격과 흥미성, 교육성 등을 고루 갖춘 고급 엔터테인먼트 교육공간으로 재창조됐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안데르센의 생애를 영상물로 소개하는 ‘하늘을 나는 책’ (Flying Book)이나 안데르센의 실크 모자와 우산을 아크릴로 형상화해 오디오 장치로 활용한 ‘소리 나는 모자’(Audio Hats), 이야기 상자(Story Alcove) 등이 그의 창조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시물.
이 밖에도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형상화한 전시 케이스와 광섬유를 활용해 동화들을 각기 형상화한 심볼 등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말하자면 관객들이 관련 전시물들을 그저 들여다보는 차원이 아니라, 전시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마치 동화의 세계 속에서 꿈 꾸듯 환상적인 느낌을 갖도록 꾸민 것이다.
아펠바움은 이러한 공간구성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 관객들이 직접 전시에 참여하는 형식을 도입, 교육적 효과를 높이고 창작의 기쁨을 느끼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관람객 모두가 전시장 안에서 다양한 체험을 거치면서 그 결과물을 자신만의 책으로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 그 것.
전시장 입구에서 내용이 빈 18페이지짜리 책을 받은 관람객들은 6단계로 나뉘어진 안데르센의 생애와 그에 부합하는 동화와 관련된 전시물을 관람한 뒤 각 장에 해당하는 체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중 하나의 예를 들자면 안데르센이 동화 못지 않은 수준 높은 ‘종이 오리기(Paper Cutting)’ 작품들을 남겼다는 점에 착안, 관람객들이 책자의 한 페이지를 특수 제작한 기계에 넣어 안데르센처럼 종이 오리기 작품을 만들어 보는 식이다.
한편, 한국 전시에서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재해석한 추가 전시물도 투입된다. 덴마크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은 ‘눈의 여왕’ ‘장난감 병정’ ‘엄지공주’ ‘성냥팔이 소녀’ ‘백조 왕자’ ‘꽃들의 무도회’의 대표적 장면을 대형 인형과 다양한 설치물들을 통해 재연한 것. 여기에 한국패션돌협회가 안데르센 동화의 테마에 맞춰 구성한 13개의 구체 관절 인형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전시 기간에는 하루 4 차례 동화 구연 행사가 열리고, 전시장 외부에서는 점토로 ‘안데르센 캐릭터 만들어보기’와 ‘페이스 페인팅’ 등의 행사가 열리는 등 다양하고도 즐거운 체험의 장들이 곳곳에 마련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