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랑이 죄랜 허민 어떤 벌이라도 받으쿠다. 사랑이 죄랜 허민 칼을 물엉 죽으쿠다. 왜 사랑했는지를 묻지맙서. 백록담의 푸른 물빛을 캐묻지 맙서”
소프라노 이화영이 제주도 사투리로 부르는 애절한 아리아 <사랑이 죄라면> 이 별이 가득한 밤하늘 속에서 울려 퍼졌다. 해발 410m의 중산간 지대에 위치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제주돌문화공원이 10일 밤 오페라 하우스로 바뀌었다. 사랑이>
한라산 정상이 어슴푸레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오름과 방사탑(액을 쫓기 위해 쌓은 돌탑)들이 무대와 자연스레 조화를 이뤘다. 한라산 중턱의 야외 무대에 올려진 오페라 <백록담> 의 공연 현장이다. 백록담>
<백록담> 은 2002년 제주시가 제작한 오페라로, 김정길 전 서울대 교수가 작곡하고, 최근 1주기였던 차범석이 대본을 썼다. 초연 이후 꾸준히 수정을 거치며 제주 뿐 아니라 서울과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공연된 이 작품이 야외 오페라(연출 장수동)로 새롭게 꾸며진 것이다. 연주를 맡은 제주시향을 비롯해 제주시립합창단과 서귀포시립합창단, 제주춤연구회 등 17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백록담>
<백록담> 은 조선 정조 때 실존 인물인 제주목사 조정철과 제주 처녀 홍윤애의 사랑 이야기에 제주의 설문대할망 설화를 덧댔다. 제주로 유배 온 선비 문길상과 사랑에 빠진 제주 처녀 구슬이가 설문대할망의 도움으로 백록담에서 사랑을 이룬다는 게 줄거리. 소재와 내용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제주의 지역색이 뚜렷했다. 백록담>
구수한 제주 사투리가 작품 전체에 등장하고, 이야홍 타령 등 제주 지역 민요가 음악에 스며들었다. 열악한 음향 시설이 극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고,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띄었지만 제주만의 특색과 야외 오페라로서의 정취는 충분히 살려냈다. 자막을 통해 제주 사투리를 쉽게 풀어준 점도 인상적이었다. 9일과 10일 이틀 공연 모두 1,500석이 가득 찰 만큼 호응이 높았다.
이동호 제주시향 지휘자는 “무대와 음향 등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만든 무대에서 한라산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공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이화영은 “마치 이탈리아어 배우듯 제주 사투리를 공부했다”며 웃었고, 문길상을 연기한 테너 양광진은 “같은 야외 공연이었던 룩셈부르크 빌츠음악축제 때에 비해 음향 면에서는 뒤지지만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서 노래를 해서 느낌이 더욱 특별했다”고 했다.
다섯살짜리 딸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고경혜(39)씨는 “제주의 상징인 백록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뿌듯했고 친숙한 사투리가 나와 더욱 정겨웠다”면서 “별과 자연과 음악이 어우러진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동호 지휘자는 “2005년 룩셈부르크에 이어 내년에는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초청을 받은 상태”라며 “힘들게 만든 창작 오페라들이 한 두 번 공연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백록담> 은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 되도록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백록담>
제주=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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