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雲南)성 남부 끝 자락에 위치한 무역도시 허커우(河口)와 국경너머 베트남 북단의 라이까이시. 이 곳은 1970년대 중-베트남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이 벌어졌던 지역이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여기는 양국간 경제교류의 최전선으로서 중화경제가 동남아 전체로 확장되는 교두보로 바뀌었다. 그 현장을 한국일보가 국내언론사상 처음으로 찾아 취재했다. /편집자주
지난달 28일 오전 8일 베트남 라오까이시 출입국관리소. 중국쪽 국경 너머에서 “베이징 스지엔(時間ㆍ시간) 지우디엔(九点ㆍ9시)!” 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과 150m 떨어져있지만 시차는 1시간이 나는 허커우시와 라오까이시의 관문이 열리는 순간. 베트남 전통 모자 논(Non)을 쓴 8,000여명의 상인들이 농산품과 수공예품을 보따리와 손수레에 싣고 중월우의교(中越友宜橋ㆍ베트남어로 끼에우교)를 경쟁하듯 달리며 중국 출입국사무소쪽으로 향했다.
같은 시간 맞은편 허커우의 출입국사무소 건물 왼편에 자리잡은 도매시장에서는 쿤밍(昆明), 난닝(南寧), 멍쯔(蒙自) 등 윈난성 각지에서 몰려든 도매상들이 수백여대의 트럭을 끌고 국경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관에서 100여m 떨어진 중월변무시장(中越邊貿市場ㆍ중국베트남 국경무역시장)에서도 중국 상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국경이 열린 지 한 시간 후 허커우시는 베트남과 중국인 무역상들, 그리고 여행객들의 물결로 넘쳐 나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중국내륙의 홍콩을 꿈꾸는 허커우(河口)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기차로 9시간30분, 중국 윈난성의 성도 쿤밍에서 버스로 12시간이 걸리는 인구 10만의 허커우시. 양국 최대 무역지대인 허커우는 한편으로 중국의 동남아 무역 거점이다.
홍콩에서 무역업을 하며 허커우에 지사를 낸 쉬청(45ㆍ徐淸) 중월무역합작사 대표는 “허커우는 중국의 샤오샹강(小香港ㆍ작은 홍콩)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2006년 한해 윈난성의 대외무역의 12.2%가 허커우를 통해 이뤄졌고, 연간 수출입액이 6억 달러에 달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상인과 여행객도 이미 300만명을 넘었다.
현재 허커우에서 중국과 베트남간 무역은 전형적인 중계무역의 형태를 띠고 있다. 베트남상인들은 주로 과일이나 수공예품을 가져와 시장에 내다팔고, 허커우에서 공산품 등 생활필수품을 사간다.
전자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진리린(34ㆍ金利潾)사장은 “고객 중 절반 이상이 베트남 상인”이라며 “특히 젊은 베트남 무역상들은 중국산 전자제품과 최신 음반을 대량으로 구입해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 비싼 값으로 팔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인기 탤런트 장동건이나 김희선 등이 나오는 드라마를 녹화한 DVD가 인기”라고 귀띔해 한류열풍이 중국-베트남 국경지역에 까지 불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자유무역도시로 제2의 도약
허커우시 북부의 베이산(北山)지구에서는 새로운 상업지대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허커우와 라오까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자유무역지대가 들어설 자리다. 허커우 북부와 라오까이시 상업지역을 묶어 5.35㎢에 이르는 자유무역지대인 ‘중월홍하상무구(中越紅河商貿區ㆍ중국-베트남 홍강지역 자유무역지대)’를 내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리광화(40ㆍ李光華) 허커우시 부시장은 “지난 92년 허커우가 변경경제합작구(국경무역지대)로 선정된 후 매년 25~30%의 성장을 이뤄왔다”며 “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해 제2의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전했다. 허커우시 정부는 이 계획을 ‘양국일성(兩國一城ㆍ중국-베트남 양국을 하나의 성으로 묶음)’이라고 명명하며 건설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도 여권과 비자없이 통행증만으로도 출입국이 가능하지만 자유무역지대가 형성되면 이마저도 필요없이 왕래가 가능하다. 시정부와 인민위원회, 정치협의회 등 3대 기관도 2년 전 이곳 근처에 신청사를 짓고 입주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허커우 시내 곳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허커우시내 홍허(紅河) 강변을 따라 있는 빙허루(賓河路)에는 수십개의 대형 호텔들과 식당, 그리고 무역센터 건물이 새롭게 들어서고 있었다.
5년 전 이곳에 문을 연 지칭그랜드호텔(吉慶大酒店) 한 관계자는 “허커우를 찾는 사람들이 매년 20%가량 증가하고 있어 현재 허커우 시내 숙박시설이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고 전했다.
●범중화경제권에 편입된 베트남 라오까이시
베트남 라오까이시의 변화도 극적이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중국군에 한달간 점령됐고, 이후 20년간 베트남 최악의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던 라오까이는 최근 허커우의 성장에 힘입어 베트남 북부의 대표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라오까이시 쿠앙호아(34) 도시개발담당 대리는 “우리 시는 허커우와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2%의 고속 성장을 이룩하고 1인당 GDP는 320달러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사실상의 범중화경제권에 편입돼 성장의 열매를 나눠먹고 있는 것이다.
실제 시의 주수입원인 여행산업에서 중국여행객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달하고, 시내 건축물이나 토목공사도 대부분 중국자본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라오까이-하노이간 고속도로 사업에서도 사실상 중국이 건축자재를 직접 지원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베트남북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가고 있다.
라오까이에서 대중무역을 하고 있는 부이티후옹(27ㆍ여)씨는 “라오까이시내 웬만한 사업에는 중국인들의 자본이 들어와 있다”며 “과거 중국을 적으로 대하던 정부가 ‘라오까이시를 베트남의 선전(深,土+川ㆍ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으로 발전시키자’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고 말했다.
허커우(중국) 라오까이(베트남)=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 中 "홍강을 동남아 시장 장악 교두보로"
“홍강의 거대한 물줄기는 중국남부 경제의 미래다” (2007년 5월30일 홍허(紅河)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
중국 윈난성 경제의 최대 화두는 홍허(紅河ㆍ홍강)다. 홍강은 윈난성 북단에서 베트남 통킹만까지 1,125㎞의 대규모 하천으로 유역면적만 16억9,000만㎢에 이른다. 홍강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이 홍강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며 과거 ‘붉은 강’에서 미래의 ‘황금의 강’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이 홍강을 주목한 것은 대규모 물류 통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바다가 없어 대규모 항구가 필요한 윈난성으로서는 홍강개발 통해 물류이동로를 확보, 동남아시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계획은 최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윈난성 정부는 허커우-라오까이 자유무역지대(추진중)를 기반으로 2008년부터 중국 쿤밍-허커우와 베트남 라오까이-하노이-하이퐁을 잇는 ‘중월경제회랑(중국-베트남 경제벨트)’ 개발에 본격 나선다는 구상이다. 중월경제회랑은 현재 단순 중계무역에서 벗어나 중국의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베트남의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결합하는 대규모 산업지대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이를 위한 교통망 구축에 나섰다. 2008년 개통을 목표로 쿤밍-허커우-하노이를 연결하는 8차선 고속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2010년 쿤밍에서 호치민시를 거쳐 캄보디아와 태국을 경유해 싱가포르까지 이어지는 동남아 종단철도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에 차 있다.
베트남 하노이시의 한 관리는 “경제회랑은 낙후한 베트남 북부지역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중국이 사실상 베트남 북부의 홍강유역 델타 삼각지를 중화경제권의 영향권에 두겠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라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홍강개발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남원건설엔지니어링의 최상기(50) 부회장은 “중국이 홍강을 통해 경제영역을 확대하자 베트남 정부도 서둘러 자체적 홍강개발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허커우(중국)=손재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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