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험권의 최대 화두는 내년 4월로 다가온 방카슈랑스 전면 확대 문제다. 은행에서 팔 수 있는 보험상품의 범위가 내년이면 사실상 모든 상품으로 확대된다.
지금까지는 보험사를 통해야만 했던 종신보험 등 보장성보험과 자동차보험까지 내년 4월부터는 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게 된다. 2003년 8월 연금보험 등 저축성보험의 은행 창구 판매가 허용되면서 시작된 방카슈랑스 제도가 그 동안 조금씩 판매 상품 범위를 늘려오다 내년에 완성되는 셈이다.
보험권은 생명보험, 손해보험 할 것 없이 난리다. “이대로 시행되면 보험업계 전체가 공멸한다”는 게 보험사들의 주장이다. 당초 전면 확대는 2005년 4월 예정이었지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보험권의 반발로 3년 연기된 바 있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기상조’임을 강조하는, 절규에 가까운 보험권의 논리를 들어봤다.
● “회사가 망한다”
현재 보험사들은 관리인력의 몇 배가 넘는 설계사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최근 들어 판매 채널이 점차 다변화하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 간은 물론, 지금도 ‘보험 아줌마’로 대표되는 설계사들이 상품 판매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다.
설계사 몫이 없는 방카슈랑스 상품은 아무래도 보험료가 조금이라도 쌀 수밖에 없다.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가 전면 확대되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보험상품 판매시장에서도 은행이 주도권을 쥐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보험사가 은행의 요구에 따라 상품내용과 가격을 맞추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 초 한 외국계 리서치사가 9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보험료가 3% 차이 나면 절반(48%) 가량의 고객이 떨어져 나가고 15% 차이면 거의 모든(93%) 고객이 이탈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실제 한국처럼 4년 만에 방카슈랑스를 완전 확대한 호주의 경우, 가격 논쟁으로 설계사의 68%가 일자리를 잃었다”며 “영국 프렌드 프로비던트 생보사는 1993년까지 애비내셔널 은행을 통한 방카슈랑스 판매에 매출의 30%를 의존하다가 은행이 보험 자회사를 차리면서 제휴를 중단하자 유동성 위기로 파산 직전까지 몰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보험개발원은 앞으로 국내 방카슈랑스 판매 상품이 기존 상품보다 10~15% 정도 가격을 낮춘다면 전체 설계사는 46%(약 7만5,000명)가 실직하고 가격을 낮추지 않아도 2만4,000명은 줄어들 것으로 최근 분석한 바 있다.
● “소비자도 피해”
피해는 결국 소비자에게도 돌아간다는 게 보험권의 주장이다.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복잡한 보험은 철저한 설명과 사후관리가 필수적인데 은행 창구직원에게 판매를 맡기면 가입자가 상품 내용을 오해한 채 가입하는 ‘불완전 판매’가 양산될 게 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허용된 연금ㆍ저축성 보험과 달리 종신ㆍ치명적질병(CI) 보험 등은 상품내용이 훨씬 복잡해 더 큰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단순 저축성보험을 판매중인 지금도 불완전 판매가 빈발하고 있는데 집단분쟁조정제도 등 소비자보호방안이 강화되면 방카슈랑스 불완전 판매는 향후 엄청난 손해배상 소송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보험권은 은행들의 횡포도 우려한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이른바 ‘꺾기’는 물론, 단기납이나 일시적 고금리 상품 위주 판매, 은행에 유리한 상품 개발 강요 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세대 김정동 교수는 “보험료는 내리고 서비스는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가격이 크게 싸지지도 않은 데다 부실 판매를 해도 책임은 보험사가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 “선결조건 갖춰달라”
행여 은행에 밉보일까 어느 보험사도 선뜻 나서서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보험권의 은행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크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민ㆍ우리ㆍ신한 등 6대 시중은행은 방카슈랑스 수수료 수입으로만 5,228억원을 벌어들여 2005년보다 16.6%나 규모를 늘렸다”며 “이는 금융당국이나 은행의 당초 예상보다도 훨씬 높은 것으로 이미 방카슈랑스는 은행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방카슈랑스 확대에 앞서 보험사들이 은행 등 다른 금융업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보험사가 은행을 겸영하는 ‘어슈어뱅킹’이나 현재 은행에만 허용되는 지급ㆍ결제 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또 은행의 보험 판매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불완전 판매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유럽처럼 은행과 보험업 간 판매상품을 동시 개방하든지, 종신보험은 제외한 미국처럼 제한적으로 개방해야 하고 기간도 최소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카슈랑스 도입 일지
1단계 : 2003년8월 연금보험 등 저축성 및 신용보험
2단계 : 2005년4월 암보험 등 제3보험 중 순수보장성 소멸형 상품
3단계 : 2006년10월 암보험 등 제3보험 중 순수보장성 환급형 상품
4단계 : 2008년4월(예정) 종신ㆍ치명적질병(CI) 등 일반개인ㆍ장기보장성 및 자동차보험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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