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고금리에 악랄한 불법 추심까지….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저신용자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자 금융감독 당국이 ‘대부업 이용자 구하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대부업체를 한번 이용하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도록 하는 금융기관들의 경직된 대출 심사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치유는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서민 맞춤대출 안내서비스’(한국이지론)에 참여하고 있는 5개 저축은행ㆍ캐피탈사는 거래 실적이 우수한 대부업체 이용자에게 낮은 대출금리를 적용해주는 ‘환승론’을 11일부터 시행한다. 연 60%대의 고금리에 허덕이는 대부업체 이용자들에게 구제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그러나 조건이 만만찮다. ▦부채 비율이 100% 이내이고 ▦연소득 1,200만원 이상이며 ▦최근 6개월 동안 연체가 25일 이내여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환승’을 통해 금리가 낮아진다지만 연 35~48% 수준에다 연체이자율도 연 60%나 돼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실제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고 대부업체 거래가 없었을 경우 상호저축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 조건은 어떨까. 기자가 ‘소득 1,500만원, 1ㆍ2금융권 대출 1,000만원, 최근 6개월 연체 10일, 중소기업 재직 3년’ 등의 조건으로 A저축은행에 대출 조건을 문의한 결과, 연 30% 가량의 금리에 최고 8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이는 환승론 대출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다. 환승론 이용 가능자가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실제 이용이 가능하다 해도 대부업체 이용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대부업체의 조회 기록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출을 아예 금지하는 제도권 금융기관들의 경직된 대출 심사 시스템에 있다. 신용 등급이 좋은 개인이 호기심에 대부업체 대출 가능 여부를 조회만 해도 은행들은 이유불문하고 대출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부업체 조회 기록이 1건이라도 있으면 은행에서는 아예 대출이 안될 뿐만 아니라 상호저축은행 등 2금융권 조회 기록이 3, 4건 이상이면 대출이 불가능하다”며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대출심사 기법을 강화하기 보다는 손 쉽게 영업을 하려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용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대부업체 이용자들도 적지 않은데도 금융회사들이 편의상 일률적으로 대출을 거부함으로써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환승론’ 등 제한적인 대책에 매달리기 보다는 금융기관 대출 심사 시스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이선근 본부장은 “한편으로는 대부업체 양성화 정책을 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그나마 있던 신용마저 무너뜨리는 현실을 방관하는 정부에 1차적 책임이 있다”며 “선진금융을 외쳐대는 은행들 역시 회수 리스크가 있는 대부업체 이용자들에 대한 대출은 무조건 배제하는 잘못된 관행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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