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대통합이 속도를 내면서 대선주자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파ㆍ세력 간 연합으로 대통합의 모양새가 갖춰지겠지만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대선주자들을 한 틀로 묶어 세우는 데는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며칠 새 범여권 대통합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8일 대통합협의체를 만들겠다며 탈당한 열린우리당 초ㆍ재선 의원 16명은 이번 주부터 국민경선을 추진할 기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우리당을 탈당했던 그룹들과 민주당 내 대통합파가 행동을 같이 할 것이 확실시된다.
7일 뉴라이트와 맞설 진보개혁세력의 부문별ㆍ지역별 결집체의 필요성을 제기했던 시민사회세력은 15일 국민회의를 출범시킨다. 11일에는 미래구상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계획도 수면 위로 떠오를 예정이다.
하지만 대선국면에서 범여권의 ‘대표 선수’로 뛰게 될 대선주자들은 여전히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다. 6ㆍ10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이해학 목사와 효림 스님 등 진보성향의 종교계 원로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범여권 대선주자 연석회의가 무산된 게 단적인 예다.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유일한 정치권 외부인사인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아예 연석회의 참석 자체를 거부했다.
이번 연석회의는 2일 효림 스님 주재로 열린 김근태ㆍ정동영 전 우리당 의장, 한명숙 전 총리, 천정배ㆍ김혁규 의원 등 대선주자 5인 캠프의 실무자 간담회에서 합의됐지만, 한 전 총리측과 김 의원측이 뒤늦게 불참을 통보했다. 종교계 일각에서 손 전 지사와 문 사장이 불참하는 연석회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한 전 총리 등이 이에 동조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약속 이행 여부를 둘러싼 대선주자 간 신경전과 주도권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친노(親盧)주자인 한 전 총리와 김 의원은 감정싸움까지 벌이고 있다.
여기에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자리잡고 있다. 각자가 처한 위치와 환경에 따라 고민과 계획이 다른 것이다. 손 전 지사측은 선(先) 독자세력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범여권 내에서 적극적인 합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당하지만 아직은 귀를 닫고 있다.
17일로 예정된 선진평화연대를 통해 자체 동력을 확보한 후에 결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손 전 지사와 가까운 우리당의 한 의원은 “독자적인 지지기반이 확실치 않았던 고건 전 총리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중도하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전 지사측은 특히 범여권에 합류하더라도 여러 후보들 가운데 한 명 정도로 참여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캠프 관계자는 “‘손학규+범여권 vs 한나라당’ 구도가 됐을 때 대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범여권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다른 주자들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상황에 따라 오픈 프라이머리 참여보다는 추후 후보단일화를 모색할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당 내에 상당한 기반을 갖고 있는 김근태ㆍ정동영 전 의장의 고민은 비슷하다. 당장은 우리당을 탈당할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시민사회세력이 주도하는 대통합신당에 합류함으로써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겠다는 명분은 세워놓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당을 떠나는 데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물론 향후 구상에 있어선 두 사람의 무게중심이 다르다. 상대적으로 재야ㆍ시민사회진영과 교감의 폭이 넓은 김 전 의장은 미래구상을 주축으로 한 신당 창당 움직임에 적극 결합할 방침이며, 오픈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전통적 지지층을 겨냥해 개혁ㆍ진보성향을 뚜렷이 내보이겠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의원은 “누가 진정으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후보인지, 평화개혁세력의 본류가 누구인지를 집중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장측은 오픈 프라이머리 과정에서 ‘정동영 vs 손학규’의 맞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당 안과 바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경쟁할 경우 “국민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구도를 제시함으로써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한 측근의원)는 것이다. 여기엔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보다 정 전 의장이 선택받을 여지가 높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다. 측근 비례대표 의원들의 거취에 민감한 것도 세몰이 가능성 차원이다.
친노 진영의 좌장으로 최근 들어 두각을 보이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의 거취 문제도 초미의 관심사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겠지만 그간 대통합을 역설해 온 만큼 친노 세력을 결집해 통합 흐름에 합류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친노 세력의 발언권을 충분히 확보하려는 이 전 총리측과 비노 진영 사이에 일정한 긴장 관계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친노 진영이 독자세력화에 나선 뒤 막판에 후보단일화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끊이지 않는다.
친노 주자인 한 전 총리와 김 의원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성과를 계승한다”는 단서를 내걸었지만 통합 흐름에 조만간 결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 우리당을 탈당한 ‘민생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최근 한나라당 출신인 손 전 지사와 각을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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