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이 승리를 바칩니다. 그 동안 너무 그리웠습니다.”
여자테니스 세계랭킹 1위 쥐스틴 에냉(25ㆍ벨기에)이 9일(한국시간) 올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한 뒤 밝힌 소감은 아주 특별했다.
1992년 모니카 셀레스 이후 15년 만의 프랑스오픈 3연패의 위업도, 통산 6회 메이저대회 우승이란 금자탑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수년간 자신을 괴롭혀온 복잡한 가정사의 아픔을 극복한 것이 더욱 의미 깊었다.
에냉은 결승전에서 세르비아의 안나 이바노비치(7위)를 2-0(61 6-2)으로 꺾은 직후 가진 장내 아나운서와의 인터뷰에서 “그 동안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고 오늘의 이 승리를 그들에게 바치겠다. 정말 사랑한다”고 말해 롤랑가로 코트에 운집한 수많은 관중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난 몇 달간은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오늘의 우승은 그래서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며 벅찬 감정을 토로했다.
가족사적으로 에냉은 굴곡의 인생 그 자체였다. 12년 전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5년 뒤인 2000년 아버지와 오빠, 동생 2명 등 남아있는 가족과도 원치 않은 결별을 해야 했다. 지난 1월에는 4년간 고락을 같이 한 남편과도 이혼하는 아픔까지 더해졌다.
홀로 남겨진 에냉이 가족을 되찾은 계기는 프랑스오픈 직전인 지난 4월. 교통사고로 의식 불명 상태가 된 남동생 다비드를 위해 병원으로 직접 찾아가 화해의 손길을 뻗었다. 7년 가까이 가족과 인연을 끊었던 에냉은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남동생 등 형제 자매를 프랑스오픈에 초청했다. 에냉의 가족들이 경기장을 직접 찾은 건 99년 이후 처음이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냉은 프랑스오픈 7경기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퍼펙트 우승’을 달성했다. 복잡한 가정사를 딛고 차지한 값진 우승컵이었다. 올시즌 첫 메이저 타이틀을 거머쥔 에냉은 경쟁자인 세레나 윌리엄스(8위ㆍ미국)와 마리아 샤라포바(2위ㆍ러시아)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여자 테니스계의 새로운 ‘독주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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