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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에서 배우는 경영] 대기업 오너의 낡은 클럽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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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에서 배우는 경영] 대기업 오너의 낡은 클럽이 주는 교훈

입력
2007.06.1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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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만한 한 대기업 오너와 라운드를 해본 사람은 예외 없이 세 번은 놀란다. 우선 카트에 묶인 골프백 중에 가장 낡은 것이 그의 백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생산된 지 10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구형인데다 겉은 닳고 닳아 본래의 색깔이나 질감을 찾을 수 없다. 고가의 유명 브랜드 일색인 일반인들의 골프백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처음에는 낡은 골프백의 주인이 누굴까 의아한 눈길을 보내다 이름표를 보곤 충격을 받는다. 동반자들은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대기업 오너에다 대외활동도 활발한 그가 낡은 구닥다리 골프백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이해가 안 되다가 무엇이나 고급을 좇는 자신들의 속물근성을 보는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놀라움은 골프백의 내용물을 확인한 뒤의 것에 비하면 약과다. 낡은 골프백에 담긴 골프클럽을 보는 순간 동반자들의 눈은 말만 내뱉지 않았을 뿐 경악 그 자체다. 골프백과 다름없이 낡고 오래 된 골프채가 꽂혀 있는 모양이라니, 어디 골동품가게 한 구석에 놓여 있으면 딱이다.

세 동반자의 골프백에 들어찬 고가의 장비와는 너무도 대비된다. 동반자들의 골프장비는 하나같이 최신형 고가 드라이버에 다루기 쉬운 아이언세트와 다양한 기능의 유틸리티 클럽 등인데 그의 클럽은 중고 골프샵에서도 사양할 정도다.

왜 굳이 이런 구형 클럽을 쓰는지 물어봤더니 “채가 멀쩡하잖아요. 약간 상처가 나긴 했지만 쓰는 데 아무 불편이 없거든요. 그래서 바꿀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골프채도 오래 되면 금속의 피로 때문에 반발력이 떨어지고 특히 최근엔 신소재와 신기술의 접목으로 다루기 쉽고 방향성과 비거리도 크게 개선된 제품이 많다며 교체의 필요성을 비쳤으나 쉽사리 마음이 동하는 것 같지 않았다.

동반자들이 세 번째로 놀라는 것은 골프를 즐기는 자세다. 그는 골프하기 좋은 신체조건을 갖췄지만 그다지 좋은 스코어를 내지는 못한다. 모든 샷에 최선을 다하는데도 스코어는 80대에서 90대에 분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는 골프를 철저하게 즐긴다. 미스 샷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고 분통 터질 실수를 한 후에도 불쾌함을 다스릴 줄 안다. 다른 동반자의 좋은 스코어는 입에 올리지만 자신의 스코어에 대해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다. 특히 18홀을 끝낸 뒤의 뒤풀이 때 동반자들과 어울려 생맥주나 포도주를 들며 격의 없는 대화로 골프의 여운을 반추하는 자세는 동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골프에세이스트 ginn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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