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6ㆍ10 항쟁 기념사마저 피해의식과 독선으로 물들였다.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항쟁을 기념하고, 지난 20년의 정치ㆍ사회 민주화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는 자리인 만큼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막말이 빠진 것을 빼고는 최근 일련의 발언과 다르지 않았다.
시작은 괜찮았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시대는 끝났으니 이른바 ‘수구세력’과도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대화와 타협, 승복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어떤 명분으로도 지역주의를 부활시키거나 기회주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위치와 품격에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국민과 사회를 쪼개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헌법과 법률을 입맛대로 재단하는 습벽은 이내 되살아났다. ‘기득권 세력과 수구언론의 결탁’ ‘안보독재와 부패세력의 본색’ 등을 언급하는 특유의 색깔론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한다”고 한나라당을 비난하더니 “더 이상 특권을 주장하고,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언론을 다시 질타했다.
나아가 청산해야 할 ‘후진적 정치 제도’의 예로 헌법 상 대통령 단임제와 선거법 상 대통령 선거중립 등을 들었다. 참여정부 평가포럼 집회와 원광대에서 행한 특강의 반복이었다.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은 ‘도대체 왜?’라는 커다란 의문과 함께 안쓰러움을 던진다. 대통령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품격을 내팽개치고, 스스로 싸움닭이 되어 피를 흘리며 뒤틀어진 기쁨을 누리려는 것이나 시도 때도 없이 천지사방으로 적의를 내뿜는 것 모두가 정상적 인 대통령의 모습과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논리적 이해나 추정의 길이 끊어진 자리에 들어설 것이라곤 막연하고 애매한 정서적 반응뿐이다.
설마 대통령이 자신의 언사에 지쳐서 국민 정신이 몽롱해지길 바랄 리야 없다. 그래서 거듭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부디 국민을 전체로서 보고, 그 중심에 조용히 서 있으라고. 이런 상식적 요구가 그리도 무겁고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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