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북단 발트해 연안의 휴양도시 하일리겐담이 지난 주 내내 세계의 이목을 모았다. ‘성스런 제방’이라는 뜻의 여기서 6일부터 사흘간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장과 숙소 등이 들어선 해안가 주변은 철통요새로 변했다.
높이 2.5m의 철조망이 12㎞에 걸쳐 빙 둘러쳐졌고, 바다엔 수십 척의 군함으로도 부족해 선박 접근을 막는 보안그물까지 설치됐다. 지난해 월드컵 이후 최고 수준의 보안경계령이 발동돼 1만 6,0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됐고, 갖가지 첨단 보안시설을 갖추는 데만 1,200만 유로(150억원)가 들었다.
■ 앞서 지난달 31일 이란 국경과 맞닿은 터키의 아라라트산 정상(해발 5,137m)에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불을 밝혔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가 G8 회담을 겨냥, 지구온난화의 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이벤트다.
독일 등에서 자원한 목공들이 보름여 만에 만든 목선의 크기는 길이 10m, 높이 4m, 폭 4m. 성경 창세기 기록에 따라 추정되는 노아의 방주 크기에 비하면 미니어처 수준이다. 그러나 40일간의 대홍수 끝에 방주가 안착한 곳으로 알려진 곳에서, 인간의 타락을 물로 심판한 신의 메시지를 재치있게 재현한 의미는 크다.
■ 이 그린피스가 고무보트로 G8 회담의 철통경계망을 한때 뚫었다가, 놀란 경찰 헬기와 고속정에 의해 무력 저지되는 사진과 기사가 엊그제 나왔다.
그게 힘이 됐을까, 미국 등의 반대로 지구 온난화 대책에 대한 공감대를 도출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연도인 1990년의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큰 틀의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를 구체화하면서 2012년까지 유효한 ‘교토의정서’의 후속대안을 만들기까지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미국을 유엔의 틀에 얽어맨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 올해 G8 의장국인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공이 크단다. 미국은 최근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는 15개국이 올해 말까지 온난화 전략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갑자기 내놓았다.
그러나 즉각 “교토의정서 등 국제협약으로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강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해석되면서 미국 내에서조차 비판에 직면했다. 메르켈 총리의 지도력은 온실가스 문제를 부인할 수도, 시인할 수도 없는 미국의 처지를 배려한 최적의 접점을 찾아낸 것에서 빛난다. ‘명예박사 노무현’도 나라 밖을 좀 쳐다봤으면 좋겠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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