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형 지음 / 푸른역사 발행·364쪽·1만5,000원
헌법은 한 체제의 성격을 규정하는 최고의 법체계다. 그러나 1987년 이전만 해도 우리 헌법은 사법고시 수험 과목의 하나 정도로나 취급됐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민주항쟁의 동력으로 현행 헌법이 태어났지만 20년이 흐른 오늘 과연 이 헌법은 우리의 민주적 이상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헌법의 대중화’에 힘써온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의 <헌법에 비친 역사> 는 종종 우리 정치체제의 이상형으로 그려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큰 기둥인 미국 헌법의 제정과정, 작동원리와 기능을 분석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한다. 헌법에>
책은 230년 전 세계 최초로 성문헌법을 만들면서 미국 헌법제정자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대통령은 몇 명으로 할 것인가?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왜 대통령만 탄핵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단임제와 중임제는 어느 것이 더 민주적이고 효율적인가? 등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운영원리에 관한 원론적 질문이 이어진다. 지은이는 이에 대한 답변을 통해 우리 헌법의 제도적 허점은 무엇인지 논증하고, 헌법 운영에 대한 정치가와 국민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설파한다.
13개주 대표들이 1년이 넘도록 치열한 토론을 벌였고 10년이 넘는 비준 기간을 통해 확립된 미국 헌법 제정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헌법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가령 탄핵 발의 즉시 국가적 혼란을 막는 차원에서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조항은, 탄핵심판 또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또 중임제의 도입은 대통령이 좀 더 책임 있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 헌법이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200년 이상 안정적으로 운영돼올 수 있던 이유는 입법자, 행정가, 국민들 모두 ‘정치체제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공화주의와 자유주의의 원칙에 비춰보며 치열하게 성찰했기 때문’ 이라고 분석한다. 그런 점에서 헌법적 원리에 대한 시민적 토론보다는 소수 정치 보스들간의 담합으로 이뤄진 우리의 87년 헌법은 여전히 ‘미완의 헌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민주화의 소중한 결실이기는 하지만 현행 헌법을 지나치게 숭배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헌법 개정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헌법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우리가 가꾼 민주화운동의 헌법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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