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중앙선관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다음 날에도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어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원광대 특강에서 노 대통령은 선거법 상 공무원의 선거 중립의무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폈다.
"정치 중립과 선거 중립의 사이가 모호하다"는 논리를 보태는 것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던 이전의 입장을 고수, 아니 오히려 강화한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는 선관위 결정이 나오기 이전 상황과 그 이후가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대통령의 정치적 법적 권한과 의무 관계를 법리적으로 따지고, 판단하는 영역은 차치해 두고 노 대통령의 새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대통령선거에 자신이나 참여정부의 개입은 '방어를 위해서도' 불가피하며, 또 반드시 간섭ㆍ참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치에서는 중립 안 해도 되고, 선거에서는 중립하라는 얘기인데,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 경계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논리이다. 거칠게 말하면 '그러니 선거 개입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위나 범위를 조금만 달리해 바로 선거운동으로 비약하는 논란도 감수한다는 말로 들린다.
● 초유의 현직 선거운동 예고탄
선거운동이란 경쟁 후보 간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가장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예고한 현직 대통령이 되는 셈인데, 대통령의 권력자원과 권한의 인프라를 운동에 투입할 경우 선거의 전후좌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금으로서는 상상 밖이다. 독재 수 십년에 민주화 수 십년을 겪었어도 '내놓고 하는' 대통령을 본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말의 꼬리만 붙들고 늘어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는 게 말이다. 노 대통령의 말꼬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리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도 다가올 대선의 파고는 거칠고도 높다.
어제 열린우리당에서는 초ㆍ재선 의원 16명이 또 탈당했다. 얼마 전 민주당과의 통합에 참여한 의원들을 제외하고, 앞서 탈당한 14명의 전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현재 무소속 상태로 대기 중이다.
열린우리당의 해체를 초래하고 가속화한 것은 노 대통령이지만 이들의 정적은 누구도 아닌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끔찍하다"고 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위법 판정이 났지만, 이 말이야말로 이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범 여권으로 불리는 이들이 어지럽게 펴는 정치라고 해야 고작 말장난의 범벅에 불과하다. 반한나라 전선이 단일화하는 것이 대통합이고, 노 정권 인사를 뺀 무리 짓기를 소통합이라고 부른다.
각자가 약진하다 고지에서 손을 잡는 후보 단일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은 과거 DJP 연합이나 노무현_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성공에서 확인한 학습효과가 배경이다. 무엇이 됐든 집권 세력의 실패에 연막을 치자는 재집권 전략으로 가장 우수한 '야바위 상술'을 찾는 행렬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 범 여권의 '야바위 행렬' 시작
여기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한 범 여권인사의 고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얼마 전 동료 의원이 골프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것을 두고 농담과 진담을 섞어 부러워했다.
골프에서 홀인원한 사람은 3년 간 재수가 좋다는데, 그 의원 재수의 유효기간이 내년 총선까지는 미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는 "그 친구는 골프 재수라도 벌어 놓았지만 그 재수도 없는 우리는 얼마나 답답한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그와 동료들은 지금 대선 넉 달 뒤, 차기 대통령 임기 시작 후 두 달 뒤의 총선에 목이 타는 것이다. 대선의 격랑 밑을 흐르는 총선의 물줄기에 몸을 담고 있는 게 우왕좌왕하는 의원들의 속 마음이다. 노 대통령의 목표와 전략 역시 여기에 닿아 있을 법하다.
차기와 현직 대통령 간 쟁투 관계, 집권세력 간 이합집산의 속셈법만으로도 선거는 한참 어지러울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가 목숨 건 듯 벌이는 한나라당의 난국도 봐야 한다. 어쩌면 가장 어려울 선거라고 각오해야 할 판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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