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987년으로부터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민주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대다수 국민은 슬픔도 노여움도 상실하고, 희망도 전망도 상실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은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반도덕적인 정권에 맞서 함께 했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가 모두 이제 내가 던진 돌에 내가 맞는 형국이 된 것은 아닙니까? 나 스스로 독재정권을 향해 맞섰던 힘이었던 도덕적 정당성을 이제는 박물관에 전시하고 과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 소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우리네 민중을 시장의 지배에 맡겨두면서 공동체를 파괴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제도권 민주주의 인사들의 박제화된 정신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도덕적 의무와도 같은 역사의식, 시대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양한 가치관의 혼재 속에서 열정도 의지도 상실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편향적이고 몰가치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인간은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현재의 상실감과 무력감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던 같은 길로 나아가고, 희망으로 연대하는 길입니다. (중략) 민주화 정신의 배반자는 그 누구도 희망을 줄 수 없고, 역사의 흐름을 또다시 왜곡할 것입니다. 그러한 배신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김병상 신부, 5월28일 명동성당 6월민주항쟁 20년 기념 미사 강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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