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는 올 1월 대의원대회를 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안을 상정했다. 상위 조직인 금속노조가 규약에서 정한 '1사 1노조 원칙'을 지키기 위한 시도였다. 통합안은 부결됐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정규직 근로자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을 같은 노조원으로 받아 들이면 자신들의 일자리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통합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노총은 2005년 9월 비정규직 조직을 강화하고 비정규직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조합원 1인당 1만원씩 기금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목표액은 2006년 말까지 50억원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80만명 중 5만명이 동참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5월 현재 모인 기금은 16억5,900만원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조합원 대부분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들이다. 말로는 "비정규직 보호"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비정규직 기금 모금에는 인색한 정규직 노조의 이중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노조, 비정규직은 조합원으로 안 받기도
1987년 6월 항쟁의 큰 축의 하나는 노동자들이다.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은 6월 푸른 하늘 아래 자신들의 울분과 분노를 쏟아냈다. 노동자들의 뜨거운 함성은 결실을 맺었다.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이뤄냈고 임금 등 근로 조건의 획기적인 개선도 가져왔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노사 갈등도 최근 들어 안정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2007년 6월, 노동계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노사(勞使)갈등이 아니라 노노(勞勞)갈등을 걱정한다. 노동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두 개의 노동계급이 이해 충돌하고 있다.
노노갈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시한폭탄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귀족노조(정규직)와 서민노조(비정규직)의 갈등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올 3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557만 3,000명이다. 전체 임금 근로자 총 1,573만 1,000명 중 36.7%가 비정규직이다. 근로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은 127만 3,000원으로 정규직(198만 5,000원)의 64.1%에 불과하다.
열악한 근로 조건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함께 일하는 정규직들의 무관심이다. 2005년 9월 GM대우차 노조 창원지부 집행부는 조합원들로부터 불신임 탄핵을 받았다.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받아들여 처우를 개선해주자는 집행부의 의견에 대다수 정규직 노조원들이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규직들의 반대 이유는 "비정규직들의 일자리 위협"이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외면은 양측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2005년 8월 현대차 노사의 임금 단체협상 때 이 회사의 비정규직 노조는 독자 파업을 단행했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노조의 돌출 행동에 즉각 제동을 걸고 사과를 요구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가 우리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 준 게 무엇이냐"며 맹비난했고 양측의 설전은 폭력사태 직전까지 갔다. 그 해 단체협상 기간 중 양측은 한번도 공동 투쟁을 하지 않고 차갑게 등을 돌렸다.
노노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고용 불안이다. 정규직들이 비정규직들을 같은 조합원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경원시하는 것은 비정규직과 투쟁할 경우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고용불안은 87년 6월 항쟁 때 노동자들을 끈끈하게 이어준 연대정신을 무디게 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6월 항쟁으로 고용 조건 등이 안정되면서 노동자들이 자기 주변을 포용하는 연대정신을 공고히 하는데 소홀해졌다"고 말했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고용 안정을 내세워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미온적인 정규직 노조에 대한 노동계 내부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대정신 회복이 해법
노노갈등의 폐해는 심각하다. 비정규직의 차별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회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비정규직은 사회의 잠재적 불만 세력으로 뭉칠 수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오늘날 비정규직의 삶은 87년 이전 사용자들로부터 억압 받던 노동자들의 처지와 비슷하다.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다시 겪어야 할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성희 소장은 "대공장 위주의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결국 고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법은 연대정신의 회복이다. 정규직은 이기주의를 버리고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보듬고 쓰다듬어야 한다. 민주노총 등 상위 노동단체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의사결정 구조와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87년 이후 노동운동은 노동기본권 실현 등 정치적인 구호만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정규직 위주의 배부른 노동운동은 이제라도 비정규직들의 힘겨운 삶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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