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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분열 - 13대 대선, 분열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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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분열 - 13대 대선, 분열의 시작

입력
2007.06.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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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중심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가 있었다.

국본에는 재야와 야당세력이 모두 집결했다. 하지만 6월 항쟁 성과에도 불구하고 12월 대선을 앞두고 재야는 비판적 지지(비지), 후보단일화(후단), 독자후보(독후) 등 세 갈래로 분열됐다. 이 분열이 이후 20년 동안 민주화 진영을 갈가리 찢어놓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주장한 비지 그룹은 여러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DJ당에 자연스레 흡수됐다.

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문동환 임채정 이해찬 등이 평화민주통일연구회(평민연)을 결성해 DJ의 평민당에 입당했고, 91년 4월에는 이우정 강영훈 등이 신민주연합으로, 95년에는 김근태 방용석 등이 통일시대민국민회의라는 조직으로 DJ와 결합했다.

영남 출신 국본 참여자 가운데 일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을 통해 88년 13대 총선으로 정치권에 데뷔했다. 90년 3당 합당 때 YS쪽 합류를 거부한 노무현 김광일 등이 대표적 인사.

이들이 만든 '꼬마 민주당'에 87년 대선 당시 YS로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했던 후단 그룹 이부영 등의 민주연합추진위원회가 91년 합류했다.

DJ, YS가 아닌 독자 후보 출마를 주장했던 독후 진영은 87년 대선 때 백기완 후보가 민중후보로 나서면서 진보정당의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88년 민중의 당과 한겨레민주당, 92년 민중당이 총선에 나섰다 사라지고, 민중당 핵심 이재오 김문수 등이 한나라당으로 옮겨 원내대표와 경기지사 등 핵심 요직을 거치는 등 파행도 계속됐다.

물론 2000년 민주노동당이 등장, 2004년 17대 총선에서 10석을 차지하며 원내 진출에 성공하는 성과도 있었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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