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말에 실시했던 정치사회 의식 조사는 국민들의 이념 성향에 두 가지 축이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기존제도에 대한 개혁적 성향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북 경제 지원과 통일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성장과 복지 지향 정책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를 묻는 문항이나 조세 제도 개편에 관한 문항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경제 관련 항목은 주요한 변수로 떠오르지 않았다.
5년전에는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한인식은 보수냐 진보냐를 구분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대북(對北) 문제에서 얼마나 전향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선진국에서는 경제적 평등 문제에 대한 입장 차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2007년의 의식 조사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 의식이 상당히 선진국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북 관계에 대한 입장과 함께 분배냐 성장이냐 혹은 고소득자에 대한 중과세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이 이념성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축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관련 사안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북풍(北風)은이제 미풍에 그치게 될 것이며, 남북 정상회담 등도 어느 특정 정파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현상도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다.
이념 성향의 요인들이 정당 지지에 미치는 영향력은 5년 전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달라졌을까? 5년 전의 민주당, 자민련 등은 그 위상이 현저하게 달라져 있거나 이미 해체됐고, 열린우리당이나 중도개혁통합신당은 5년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의미 있는비교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지지여부만을 종속 변인으로 놓고 이념 관련 문항 6개를 설명 변인으로 삼아, 인구통계학적 변인들을 통제한뒤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2002년에는 한나라당 지지를 결정짓는 변인은 대북경제 지원과 통일에 대한 부정적 입장 등이었다. 그 밖의 변인들은 중요한 변인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대북경제 지원과 통일에 대한 부정적 입장은 물론이고, 국가보안법 유지에 대한 긍정적 입장, 고소득자 중과세에 대한 부정적 입장, 대미 우호관계 증진 지지 등의 변인들이 모두 유의미한 설명력을 갖는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제 우리 국민들도 뚜렷한 이념성향에 따라서 지지 정당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한나라당에 대한높은 지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유권자들의 이념을 반영한 이유 있는 지지라고 볼 수 있다.
5년 전과 비교해볼 때, 보수·진보의 이념 성향의 분포 자체는 비슷하다. 보수세력이 증가한 게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념성향을보수라고규정하는사람은2.9% 포인트 가량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보수층의 증가라기 보다는 보수층과 중도보수층의 결집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보수적 노선을 보다 분명히 하는 것이 공고한 지지 세력을 유지하는 길이다.
이는 또 동시에 개혁성향을 지닌 비(非)한나라당의 유권자들은 개혁 성향을 보이면서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당이 나타날 경우 지지를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5년 동안 국민들의 의식은 크게 보수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국민의식 설문조사에 비해 2007년 조사에서는 대북지원 축소론, 복지예산 동결ㆍ축소 의견이 증가했다. 반면 미국 중심 외교 탈피론, 고소득자 증세 답변은 줄었다. 사회 전반의 실용적, 보수화 경향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대북 경제지원 문제는 5년 전에 비해 여론이 다소 강경해졌다. '축소 및 인도적 지원 한정'(49.6%)과 '전면 중단'(18.8%) 등 부정적 의견이 68.4%에 이르렀다. 반면 '현 수준 유지'(18.2%) '확대'(11.1%) 답변은 29.3%에 그쳤다. 2002년의 경우에도 대북지원에 대한 부정적 의견(59.1%)이 긍정적 의견(39.9%)에 비해 많기는 했지만 5년 사이 대북 강경론이 10% 포인트 가량 늘어난 게 눈에 띈다. 특히 부정적 의견은 20대가 2002년 46.3%에서 60.8%로, 호남이 38%에서 54.7%로 대폭 증가했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둘 필요가 없다'는 부정적 의견이 28.7%에서 31.9%로 늘어났다. 또 '꼭 해야 한다'는 적극적 통일론(15.2%→13.7%), 속도 조절론(51.6%→49.3%)은 약간 감소했다. 남북 관계 설문에서 부정적 답변이 증가한 이유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감동이 사그라지고 북한 핵실험 등 類?피로감만 쌓여온 결과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한미동맹 강화는 2002년 6.3%에서 2007년 12.8%로, 미국과의 우호 관계 유지 의견도 50.1%에서 55.3%로 증가했다. 2002년에 비해 대학 재학 이상 학력층(45.1%→68.7%)과 30대(42.3%→59.2%)에서 한미 관계 강화 입장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컸다. 반면 '미국 중심의 외교에서 탈피해야 한다'(31.8%→22.9%), '미국과 되도록 거리를 두어야 한다'(10.3%→7.5%)는 자주성 강조 답변은 줄어들었다.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유지 주장이 2002년(12.2%)에 비해 15.6%로 많아졌다. 하지만 '즉시 철폐'(7.3%→6.9%) '대체 입법'(34.5%→34.2%), '부분 개정'(40.4%→38.1%) 등의 의견은 큰 변화가 없었다.
경제 분야에서도 국민들의 보수화 경향이 감지됐다. 경제성장과 복지 정책의 관계에 대해 응답자들은 2002년보다 성장 쪽에 힘을 실었다. '복지 치중'(23.8%→20.6%) '복지예산 다소 증액'(46.4%→39.3%) 등 분배 강화론은 비율이 감소한 반면, '복지예산 동결'(16.1%→19.9%) '축소'(11.2%→16.7%) 등 성장 강화론은 점점 더 세를 얻고 있다. 물론 국민 10명 중 6명(59.9%)은 아직도 복지예산을 더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징수 문제도 '현행 유지'(5.6%→10.1%) '감세'(4.2%→6.9%) 답변은 늘고, '중과세'(64.3%→47.2%)는 준 것으로 조사됐다.
정상원기자 omot@hk.co.kr
■ 이념성향, 국민 42% "중도"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대단히 진보’(0)와 ‘대단히 보수’(10) 사이의 숫자로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42%가 ‘중도’(5)를 택했다. 진보쪽(0~4)과 보수쪽(6~10)에서는 각각 24.2%와 31.8%의 응답 분포를 보였다. 모든 응답자가 매긴 점수를 평균한 ‘이념 성향 평균점수’는 5.28점이었다.
2002년 조사에서는 중도가 38.8%, 진보쪽과 보수쪽이 각각 24.9%와 34.7%의 응답 분포를 보였다. 5년 전에 비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소폭 늘어난 대신 보수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2002년 이념 성향 평균점수는 5.39점으로 보수 성향이 약간 더 강세였다.
2007년 조사에서는 특히 연령별로 이념 성향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20대의 경우 5년 전 조사에서 ‘중도’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39%였던 반면, 이번 조사에서는 34.7%로 줄었다. 대신 ‘진보’라고 응답한 비율(34.2%→38.3%)이 비슷한 폭으로 늘었다.
그러나 30대의 경우는 진보쪽 응답자 비율(29.3%→22.1%)이 7.2% 포인트 줄고, 중도 응답자 비율(40.3%→50.4%)이 10%포인트 이상 늘어 20대와는 다른 경향을 보여줬다. 참여정부 출범 직전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을 띠던 30대가 상당수 중도적 성향으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40대와 50대에서도 중도 응답자의 비율은 각각 45.1%와 41.3%로 5년 전에 비해 각각 7.2%, 6.7% 포인트씩 늘었다. 그러나 60세 이상에서는 중도가 3.5% 포인트 가량 줄어든 대신 오히려 진보쪽이 4.1%포인트 늘어 눈길을 끌었다.
신재연 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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