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지음 / 교양인 발행ㆍ356쪽ㆍ1만4,000원
‘양심적병역거부는 인류의 평화적 공존에 대한 간절한 희망과 결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평화에 대한 이상은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하고 존중해온 것이다.’ (2004년 8월, 김경일 전효숙 헌법재판관의 소수의견)
‘기독교 종단은 국가안보와 국군의 정신전력차원에서 병역대체법 도입에 절대로 반대한다. 이를 도입하면 극도의 국기문란이 예상된다.’(2006년 3월, 한국기독교 군선교연합회가 여야국회의원에 보낸 편지)
양심적병역거부의 인정여부는 국가보안법의 존폐 문제에 버금가는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완고한 군사국가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양심적병역거부는 사치이자 위선이라는 주장과, 보편적 인권존중 차원에서 양심적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이들에 대한 합법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의 <평화의 얼굴> 은 양심적병역거부자들에게 덧씌워진 우리사회의 오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평화의>
중세의 프란체스코 수도회 등 양심적병역거부를 지지한 기독교의 오랜 전통,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무하마드 알리 등 양심적병역거부를 통해 평화주의를 실천한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70년간 1만명이 넘는 양심적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낸 우리나라의 엄혹한 탄압사를 폭로하며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지은이는 우선 병역기피자, 종교적이단자라는 프리즘으로만 비쳐지는 이들에 대한 시각을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교정해보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가치판단의 뉘앙스가 풍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라는 용어를 보다 객관적인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라는 말로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는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모두 비양심적이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양심’ 이란 남들에게 아무리 이상하게 보여도 모든 전쟁에 반대하거나 집총을 거부하는 내면의 목소리다.
책은 병역거부자들이 주장하는 ‘양심’의 진정성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별개로, 우리사회가 법적ㆍ문화적으로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이들을 가혹하게 차별하고 소외시킨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5ㆍ16 쿠데타 이후 국가의 병영화를 꾀한 군사독재세력과, ‘이단척결’이란 명분으로 이들과 야합한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계에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가령 한국전쟁 때만 해도 정부는 안식교인들이 비전투 복무를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등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5ㆍ16 쿠데타 이후 이들은 군대폭력에 시달리며 맞아죽거나, 때로는 군복무기간의 2배가 넘는 7년 이상 수형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지은이는 남북대치 상황 때문에 대체복무제 도입이 시기상조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발상의 전환을 꾀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이유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라면 믿고싶은 종교를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자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과연 민주주의적 가치와 분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이 문제의 공론화를 시도한 <칼을 쳐서 보습을> (2001)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폭 고쳐 새로 쓴 것이다. 김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과 소외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관용’의 필요성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칼을>
양심적병역거부에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충실한 자기 논리가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존중돼야 한다. 그들이 저자의 지적을 수긍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견해를 갖든, 양심적병역거부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알아보고 싶다면 일독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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