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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객관적 기록보다 더 가슴 아픈 풍경 '슬픈 미나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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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객관적 기록보다 더 가슴 아픈 풍경 '슬픈 미나마타'

입력
2007.06.0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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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무레 미치코 지음ㆍ김경인 옮김 / 달팽이 발행ㆍ342쪽ㆍ1만2,000원

일본 큐슈의 시라누이해(海)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아수라도를 감추고 있었다. 신일본질소 공장에서 미나마타강을 통해 흘려보낸 유기수은이 바닷속 어패류에 축적돼 그것을 먹은 주민들의 뇌세포를 파괴했다. 실성한 환자들이 몸을 가누지 못했고, 고양이들은 코를 박고 물구나무 서기를 반복하다 죽었다. 1954년 최초로 발생한 ‘미나마타병’이 빚은 살풍경이었다.

이 책은 미나마타병에 관한 글이다.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68년 정부의 공해병 정식 인정 때까지 환자 가족들이 펼친 지난한 투쟁 과정이고, 또 하나는 환자와 그 가족을 상대로 한 인터뷰다.

르포르타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간단치 않다. 특히 인터뷰 부분을 더 절절하게 읽은 (아마도 대다수의) 독자라면 이 생생한 증언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됐음을 안 순간 심한 배신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이 책을 쓸 때까지 평범한 주부였던 작가의 이력까지 독자의 착각을 부추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가를 탓할 일이 아니다. 도리어 상찬할 일이다. 르포보다는 사(私)소설이라 불러야 마땅할 이 작품에서 ‘(취재원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글로 옮’기는 글쓰기 전략을 통해 작가는 객관적 기록으론 닿을 수 없는 고통과 진실에 성큼 다가선다.

하나뿐인 아들과 그 손자를 몹쓸병에 내준 에즈노 할아버지의 취중묵언이 “벌 받을 소린 줄은 알지만, 우리 내외보다 먼저 모쿠타로(손자)를 데려가시면 감사하겄어”란 토로로 번역될 때, 재혼한지 3년 만에 몸져누운 마흔살 유키 씨가 “지, 진짜, 영감(남편), 한심한, 여자, 가, 돼, 버렸, 네요. 나 다시 한번,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더듬어 말할 때, 작가의 유려한 문장은 그대로 곡진한 레퀴엠이다.

출간 당시 무녀(巫女)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지만 작가가 감상주의에만 매몰됐을 거라 예단하는 것은 또 다른 착각이다. 작가는 희대의 공해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역학관계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다.

오염된 어패류가 병인으로 밝혀지면서 생선 소매상들은 어민들에게 등을 돌렸고, 이 때문에 끝끝내 환자의 존재를 숨긴 가족들이 있었다. 자신들을 지역 경제의 버팀목으로 여기는 여론을 등에 업고 회사는 환자들과 불공정 보상 계약을 했다. 하여 정부와 법원이 손을 들어줄 때까지 보상 투쟁은 대다수 시민들의 외면 속에 근근이 이어졌다.

반세기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그려낸 풍경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자연의 일원임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시대에 미나마타병 사태는 반면교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인가. 책을 낸 ‘달팽이’는 생태ㆍ환경 전문 출판사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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