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는 많은 기업과 은행을 몰락시켰고, 중년의 회사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하지만 그림자의 반대편에는 빛도 있는 법. 역설적일지는 몰라도, 국민은행은 외환 위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합병 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특별법에 의해 세워진 특수은행이었다. 각각 서민금융과 주택금융을 전담하기 위한 은행이었다. 당시 5대 은행은 물론 우수 인재의 산실이었던 외환은행 등 주요 시중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은행이었다.
2001년 두 은행 간 합병은 사정을 180도 바꿔 놓았다. 단숨에 자산 200조원에 육박하는 공룡 은행으로 탈바꿈하면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리딩 뱅크’의 반열에 올랐다. 2001년 말 신탁 자산을 포함한 총자산이 190조원으로 당시 2위였던 한빛은행(85조원)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규모의 경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대한민국 성인의 대부분(2,600만 명)이 거래를 하는 은행의 보통명사가 됐고, 은행권 금리나 수수료 결정에 나침반 역할을 했다.
위상에 걸맞은 내실도 갖췄다. 99년 말 기준 옛 국민은행 11.27%, 주택은행 7.36%에 달했던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작년 말 1.03%까지 떨어졌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3월 국민은행의 신용등급을 국내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국가등급과 동일한 ‘A’로 평가했다. 국민은행이 발행한 은행채 등은 국가가 발행한 국채만큼 안전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앞날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까마득한 2위권이었던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턱밑까지 쫓아왔고, 지난해 외환은행 인수 무산으로 성장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쟁사들이 금융지주회사로 무장하며 자본시장통합법 등 겸업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 반면, 최근 증권사 인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도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새로운 변신을 준비 중이다. 해외 지역 전문가 육성, 인도네시아 BII은행 인수 추진 등 해외영업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도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있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외환은행 인수에 나설 채비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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