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외환위기가 오히려 성공의 발판이 됐던 기업도 있다. CJ가 대표적인 사례다.
1997년 당시 30대 그룹에 속했던 기업군 중 16개 그룹만이 2년 후 30대 그룹에 남게 됐을 정도로, 많은 기업이 쓰러져갔다. 그러나 반대로 CJ(당시 제일제당)를 비롯해 준비된 신흥기업들은 30대 그룹에 새롭게 진입했다. CJ가 위기상황에서 약진한 이유는 IMF 이전부터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93년 삼성으로부터의 독립경영을 선언하고 96년 독자 그룹으로 출범한 CJ는 2000년 2월에 그룹의 사업구조를 4대 핵심사업군으로 재편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당장 살 궁리보다는 내일의 먹거리를 앞서 고민한 것이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생명공학, 신유통 등의 핵심사업군을 중심으로 CJ는 사업확대를 가속화했다. 98년 4월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 'CGV 강변11'을 개관했고, 99년부터는 CJ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투자를 본격화했다. 신유통 분야에서는 2000년 현재 CJ홈쇼핑의 전신인 39쇼핑을 인수했고, 식품 분야에서는 CJ푸드빌과 CJ푸드시스템을 출범시켰다.
반대로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 대해서는 청산과 매각이 이어졌다. 80년대부터 운영하던 음료사업부분을 롯데칠성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CJ그룹의 재무구조는 현격하게 개선됐다. CJ의 자산규모는 삼성그룹 분리 당시보다 5배 이상 커졌다. 또 IMF 이전에 233%였던 부채비율은 2005년말 89%로 낮아졌다. CJ는 이에 그치지 않고 사업부문 매각 및 서울 영등포와 용산, 부산 서면 등 불필요한 부동산 등을 계속해서 매각해갔다.
내부 조직문화도 바꿨다. CJ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기업문화 구축을 위해 99년9월 대기업 최초로 자율 복장제를 도입하는 혁신을 일으켰다. 2000년1월부터는 호칭파괴를 선언, 모든 임직원들의 직위에 따른 존대를 없애고, '님'으로 통일했다. 이를 통해 직급에 따른 수직적 조직문화가 점차 수평적인 문화로 바뀌게 됐으며, 외부적으로도 '젊고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회사'로 이미지가 개선됐다.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한 것도 다른 기업과는 다른 점이다. 2000년부터 시작한 소외계층 무료급식 서비스 '푸드뱅크'가 대표적이다. 특히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 하에 2005년 'CJ나눔재단'이 출범했고, 2006년에는 CJ문화재단을 설립함으로써 '존경할 만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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