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및 부품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일본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원엔 환율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대만 등과의 경쟁 때문에 수출가격을 올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K 사장은 "원화 강세가 진정되지 않는 한 일본에 더 팔아 봐야 남는게 없다"면서 "그동안 공을 들인 일본 시장을 포기하고 유럽 등 새 시장을 개척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경제의 실력에 걸맞지 않게 고평가된 원화 가치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격경쟁력 저하와 채산성 악화에 직면한 기업들은 "인내의 한계점에 다다랐다"고 아우성이고, 경제 회생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마저 한계 상황에 부닥칠 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7일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 1분기를 기준으로 할 때 실질실효환율로 산정한 적정 원ㆍ달러 환율은 958.6원 수준이다. 그러나 6월5일 현재 환율은 927.0원으로 달러당 30원 이상 고평가 돼있다. 연구소 측은 "원ㆍ달러 환율이 연말에는 914원대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주요국 화폐 가운데 유독 한국 원화만 강세라는 점이다. 3월 이후 현재까지 일본 대만 등의 화폐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각각 5.2%, 1.7% 평가절하됐다. 무역흑자 행진 중인 중국 위안화의 절상률이 1.2%에 그친 반면 우리 원화의 절상률은 2.3%에 달한다. 그만큼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급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환시장이 정상 작동할 경우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줄어들면 그 만큼 해당 국가의 화폐 가치 역시 하락해야 한다. 올들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2월 한 달을 빼고는 적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원화 가치는 치솟고 있다. 이유는 환차익을 노린 해외 단기차입이나 해외 채권 발행 등을 통해 계속 외화를 들여오는 금융기관과 일부 기업들에 있다.
3월 한달간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 등 국내 은행들의 해외 단기차입은 85억 달러에 달했다. 이후 외환 당국의 전방위 압박으로 단기차입 규모가 줄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은행과 기업들의 해외 채권 발행이 급증하면서 4월 한달 동안 해외 채권 발행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자금이 사상 최고치인 50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외화를 들여오는 통로만 바꾼 것이다.
국내로 들어온 달러는 대부분 즉시 원화로 환전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실질환율 보다 높아진다. 즉 일부 금융기관들의 손쉬운 재정거래가 비정상적으로 원화 가치를 절상시켜 수출 경쟁력의 근간을 갉아먹는 형국인 셈이다.
다행히 수출은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원화 강세가 계속될 경우 한계점에 다다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원화 강세에도 수출 증가세가 유지되는 것은 환율절상에 따른 수출 단가 인상 효과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며, 비정상적인 원화 강세가 계속되면 결국 수출마저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제기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출 기업들이 원화 절상분을 수출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흡수하는 역량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외환 당국이 적정 수준의 원화 가치 유지에 나서야 한다"며 외환 당국의 적극 개입을 촉구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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