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우리 기업의 채산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하락하자 외환 당국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원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돈을 더 풀면 되겠지만 시중에는 유동성이 넘쳐나고 있다.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금리는 더 올리고 돈줄은 조여야 할 상황이다. 한마디로 외환 당국이 환율 하락과 과잉 유동성, 즉 환율정책과 금리정책 간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과잉 유동성을 해결하자니 환율이 더 떨어져 기업을 한계상황으로 내몰 수 있고, 환율 하락을 막자니 유동성 과잉과 물가 불안을 더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방법은 있다. 국내자금을 해외로 빼내면 달러 수요를 늘려 원화가치를 안정시키면서 과잉 유동성도 해소할 수 있다. 해외 부동산 취득한도 확대, 해외펀드 비과세 등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대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경상수지 흑자, 자본수지 적자'의 선진국형 수지구조 대신 오히려 대외환경에 취약한 '경상수지 적자, 자본수지 흑자'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4월중 경상수지는 큰 폭의 서비스수지 적자 탓에 35억9,36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자본수지는 해외 단기차입 증가와 해외 채권발행 증가로 89억7,590만 달러 흑자를 봤다. 국내자금의 해외투자보다 해외자금의 국내투자가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이 돈을 더 찍어 넘치는 달러를 매입해 환율을 안정시키고, 달러 매입을 위해 풀린 원화는 통안증권 발행을 통해 흡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통안증권 이자 때문에 오히려 유동성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통안증권 발행 잔액은 158조3,900억원으로 2005년보다 3조1,550억원 늘어났다. 이로 인한 이자만 6조8,063억원이나 된다. 최근 수년간 한은 수지 적자의 주범도 바로 통안증권 이자다.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를 발행한 뒤 이 자금으로 달러화를 살 수도 있지만 여의치 않다. 외평기금의 손실과 국가채무 증가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채무 증가분 34조8,000억원 가운데 11조5,000억원이 외평채 발행 때문에 발생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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