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윈회가 어제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발언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끔찍할 것"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한반도 대운하에 투자하겠는가" "독재자의 딸이 한국의 지도자가 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등의 발언이 선거 관리의 책임을 가진 대통령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칠 사전선거 운동은 아니며, 참여정부평가포럼이 노 대통령의 사조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일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선관위의 결정이 엄정하고도 독립적인 원칙과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존중한다. 특히 중립의무 위반이라는 판단은 사필귀정의 당연한 결정으로 본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반발한다지만 턱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 무척 착잡하다.
노 대통령이 선관위로부터 선거 중립의무 준수를 요청 받은 것은 세번째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지지를 유도하는 발언이 두 번 문제가 됐고, 대선을 앞두고 같은 일이 반복됐다. 헌법 수호의 책임과 의무를 가지며 준법의 상징과 대표가 돼야 할 대통령이 위법행위를 반복하는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국민은 난감하다.
선관위가 독립ㆍ중립적 헌법기관이지만 대통령의 위법에 대해 강제적 이행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형사 소추를 면제 받는 예외적 지위를 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범법을 심판한 선관위의 결정이 최고 권력자에 대해 엄정한 정치적 채찍질을 가했다는 의미는 부연의 필요 없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대통령의 정치적 자유를 거론하며 헌법소원 등의 쟁송을 내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헌법기관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뒤엎으려는 반 헌법적 행위이자, 공동체를 소모적 혼돈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부당하고 위험한 일이다.
선관위가 청와대의 소명 자료 제출 및 의견진술 기회 부여 요청을 일찌감치 불허한 결정에서 이미 그런 부당성의 일부가 드러났다고 본다. 선관위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반발은 즉각 거두는 것이 마땅하다.
헌법기관의 헌법 행위에 대놓고 대드는 대통령이 무슨 자격과 권한으로 국사를, 국정을 다루며, 대선이라는 대사를 공정하게 관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진다.
국민은 법을 어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섬겨야 할 불우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지겹게도 되풀이되는 엇나간 언행, 급기야 공개리에 위법을 저지르고도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부정할 수도, 아니면 그 권위를 인정하고 존경할 수도 없는 이중, 삼중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미래를 새로 여는 대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외곬수의 독선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선관위의 결정에 깨끗이 승복하고 선관위의 요청을 군말 없이 따르는 게 그나마 국민을 존중하고 정부의 체통을 살리는 길이다. 사과와 반성이 표명돼야 함은 당연하다. 상식과 원칙, 법리로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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