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기아차 인수 결정을 내린 지 불과 4개월이 지난 1999년 3월2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동생인 정세영 현대차 명예회장을 집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몽구가 장자(長子)인데,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 세계 13위에 불과했던 현대차가 오늘날 세계 6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정몽구 체제가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정몽구 체제의 명분을 장자상속에서 찾았지만, 실제 이유는 정몽구 회장이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평가다. 정몽구 회장은 위기를 정면돌파로 극복하려는 성향 등 모든 면에서 선친을 닮았으며,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세계 자동차 산업 역사상 유례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감한 공격 경영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가 글로벌 리더로 도약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 성공적인 중국 시장 진출은 ‘왕회장’(정 명예회장의 별칭)의 조선업 진출과 매우 흡사하다.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를 짓기도 전에 그리스 리바노스 그룹에서 26만톤급 선박을 두 척이나 주문 받았는데, 정 회장도 중국 정부의 정식 승인이 나기도 전에 베이징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환위기의 혼란 상황에서 기아차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강한 추진력의 정몽구 회장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회사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1996년 이후 10년간 그룹의 자동차 생산능력은 약 3배, 매출액은 9배 늘었다. 96년에는 국내에서만 자동차를 128만대 생산했으나, 지난해에는 139만대의 해외 생산능력을 포함해 총 439만대를 만들어 냈다. 또 매출액은 96년 11조원 수준에 머물렀으나, 올해에는 그룹 전체 매출목표를 106조원으로 잡고 있다.
현대차의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은 품질 지수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 시장에서 2년 연속 JD파워 소비자 만족도 1위(2002년 단독, 2003년 공동)를 기록한데 이어 2004년에는 신차 품질평가(IQS)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2006년에도 포르쉐, 렉서스에 이어 3위를 차지했는데, 고급 브랜드를 제외한 일반 브랜드 순위에서는 1위에 올랐다.
신차 품질뿐만 아니라 내구품질에서도 비약적인 상승을 기록, 현대차의 수익창출 능력이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전문지인 ‘컨슈머리포트’는 최근 발표한 내구성 조사 결과를 통해, 현대차의 순위가 전년 대비 6계단 상승한 7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환율하락과 일본 업체의 거센 공격으로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해외 시장에서의 위상강화를 위해 ‘현다이(HYUNDAI)’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핵심 전략은 ‘고객 우선 경영’이다. 정 회장은 연초 신년사에서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전세계 고객들로부터 성능에 걸 맞는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한다”며 “연구개발, 생산, 판매, 정비 등 모든 경영활동에 고객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대ㆍ기아차는 지난해 11월 고객을 찾아가 사전에 차량 정비점검을 해주는 ‘비포 서비스’를 개시했으며, 기아차는 캐시백 주유 포인트 적립 서비스는 물론이고 정기적인 차량 점검까지 책임지는 ‘Q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외환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것처럼, 현대차는 최근 일시적으로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충분히 반전시킬 저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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