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똑똑히 보아라. 이렇게 폐인이 되어 망가진 모습을. 누가 천상병 시인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는가!”(260쪽) 비통하다.
이 글 바로 뒤에 수록된 천상병 시인의 사진 석 점은 문장 말미의 느낌표에 대한 증명이다.
평균 한 점씩 사진을 수록한 여타 문인들과 같은 비중으로 천 시인을 다룰 수 없다고 사진작가 육명심(76)씨는 판단했던 것 같다.
렌즈가 포착한 시인의 망가짐 앞에 보는 이의 마음은 내려 앉는다.
육씨가 우리의 대표 작가 71인을 가까이서 담은 사진 120여 컷을 모아 <육명심의 문인의 초상> (열음사)이란 이름으로 공개했다. 육명심의>
1970년대 초반, 애용하던 카메라를 메고 문인들과 연분을 맺은 결과다.
당시 문단의 새 주자로 각광 받던 30~40대 작가들은 우리 시대의 거장이다.
그들이 라이카 M3 렌즈에 내면을 열어 보인 것이다. 요설을 머쓱하게 하는 직설적 영상은 가장 일상적인 모습에서 건져 올린 문인들의 내면으로 이어진다.
‘소뼈를 솥에 넣고 한참을 달여낸 진한 국물 맛이 나는’ 신경림, ‘대학의 금기도 주저 없이 깨트린 자칭 국보’ 양주동, ‘성과 속이, 똥과 오줌이 별과 달을 만나는’ 서정주, ‘강아지풀만 가득한 정원에서 차를 나눠 마신’ 피천득, ‘이른 새벽 영롱하게 맺히는 이슬만 받아 먹고 사는 어떤 먼 나라 사람일 것 같은’ 박목월 등 원로들뿐만 아니다.
“구상 시인은 자정에도 전화 걸어 와 만날 약속할 정도로, 나를 매우 아꼈는데….” ‘대낮부터 놀이터 의자에서 곯아떨어진 남자를 배경으로 그네 쇠사슬 사이에 선’ 조태일, 비좁고 복잡한 집에서 난감해 하던 차에 잽싸게 누른 셔터로 영원의 순간을 포착한 박진환 등 문인들은 물론 ‘머리보다 가슴과 생명의 뿌리를 뒤흔드는’ 극작가 오태석 등의 사진에 지금껏 보아 온 비슷한 장면들이 머쓱할 정도다.
“3주일 만에 글까지 다 쓰고 나니 3, 4㎏ 빠지더군요.”
그는 ‘절대 고독’을 엄수한다. 이번 책은 그 결과다.
“30여년을 혼자 조용히 간직해 왔어요. 굳이 발표할 이유도 없었고, 사진 작업하는 데만도 짬이 모자랐죠.”
73년 신구대, 81년 서울예술대 등지에 사진학과를 창설하고 99년 정년 퇴임 후에도 상명대 겸임교수로 2년을 보내야 했던 나날 끝에 얻은 짬이다.
연세대 영문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듀안 마이클 등 미국과 일본의 예술가들과 교호하며 예술의 본질을 탐색했다.
걸레스님 중광이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친했던 그에게는 자신만의 중광 사진을 비롯해 방방곡곡의 토박이와, 민속학자의 자문을 얻어가며 8년을 찍어 모은 장승의 사진 등 정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료들이 쌓여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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