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다 이라 / 작가정신달디단 "무이자" 유혹 라스트로 치닫는 群像
리모컨을 누르면 어김없이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오래 전 달리다와 알랭 들롱의 분위기있는 목소리로 들었던 샹송 'Paroles Paroles'다. "무이자, 무이자, 무이~자"가 끝도없이 이어진다. 듀엣 '사채(私債)스'로 불린다는 남녀가 "아무 이유 없어"를 속삭이는 이른바 '무이자 송'이다. 초등학생들까지 입에 넣고 부르는 국민가요가 됐단다.
노랫가락에 실려 일본 작가 이시다 이라(47)의 소설집 의 시커먼 표지가 떠오른다.
모두 '라스트'를 제목 앞머리에 단 7편의 짧은 소설을 묶었다. 인생의 라스트로 치닫는 인
간들의 이야기인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대부분 빚의 덫이다. "천천히 생각해보게. 살
아남는 것도 지옥.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당신이 뿌린 씨앗이니까 남 원망은 마. 돈을 빌린
건 당신이니까. 가족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 '라스트 라이드(Last Ride)'의 주인공인 제본업자 후쿠모토에게 사채업자들은 부인과 딸을 팔아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자살하고 생명보험금으로 가족이나 살리라며 24시간의 유예를 준다.
작가는 "모든 시스템을 경제성장이라는 지상목표에 맞추어… 수많은 개인이 쓸모없는 군살로 정리되어 떨어져 나가는" 일본사회, 거기서 벼랑 끝에 몰리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압력 속에서, 뻔히 눈앞에 보이는 절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밀려나는 이야기"라고 그는 한국어판(2004년) 서문에 쓰고 있다. 어디 일본만의 이야기인가. 달콤한 '무이자 송'을 들을 때마다, 우리 보통 인생들의 불길한 라스트가 연상돼 섬뜩하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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