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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수련이 떠있는 연못의 냄새… 빛의 온도·습도까지 생생히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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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전 관람기/ 수련이 떠있는 연못의 냄새… 빛의 온도·습도까지 생생히 느껴

입력
2007.06.07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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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수련> 이 눈에 들어왔다. 색채는 약간 붉은 감이 돌고 터치도 강하다. 그 옆에 있는 작은 <수련> 은 다소 차분해서 전체적으로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 듯 보였다. 이것이 내게 친숙한 모네의 세계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수련> 은 일본에서 인기 작품이기 때문에 나도 젊은 시절부터 몇 번 진품을 본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도쿄의 국립서양미술관에 있는 것이다. 그밖에 오하라미술관이나 브리지스톤미술관 등 일본에는 근대서양회화의 뛰어난 컬렉션이 많다.

그것은 근대 일본이 제국주의의 길을 걸어 부를 축적했던 것, 당시 일본 부유층의 미적 취미가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회화에 경도돼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1983년 30세를 넘어 처음 유럽을 여행하던 때 많은 미술 작품을 보았지만, 당시 나는 인상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인상파의 장식적인 아름다움을 추어올리는 일본사회의 천박한 풍조를 진절머리 내고 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의 가혹함이나 치열함과 무관한 세계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그런 가혹함이나 치열함의 와중에서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여유를 갖고 파리에 체류하면서도 오랑주리미술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수련> 의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나의 선입견은 보기 좋게 뒤집어졌다.

타원형의 넓은 방이 두 개. 그 벽면을 빙 둘러 360도를 각 4점의 <수련> 이 뒤덮고 있었다. 연못의 수면에 반사된 빛, 떠 있는 꽃이나 식물의 형태와 색채의 미묘한 변화가 전부 그려져 있었다. 공기의 온도나 습도, 물이나 식물의 냄새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체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전시실 소파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그림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려 또는 눈을 감고 온몸의 감각으로 그림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감았던 눈꺼풀의 안쪽에 그림의 잔상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것은 수련이라는 식물의 형태가 아니었다. 모양도 색채도 용해된 하나의 ‘인상’이었다.

오랑주리미술관의 벽화 <수련> 은 200점 이상의 <수련> 연작을 그린 모네 인생의 집대성이다. 모네는 백내장을 앓아 거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그 대작을 완성했다. 86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망막에 남아있는 잔상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빛, 색채, 인상을 그리는 행위에 바친 이 치열함. 인상파는 아름다움만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근대회화의 혁신이라고 하는 시대정신에 투철한, 또 하나의 치열한 정신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후 25년의 세월이 흘러 만년의 초입에 접어든 내가 서울에서 모네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이 모네를 마주 하면서 그 작품을 온몸으로 느낄 것을 기대한다.

서경식 일본 도쿄경제대학 교수ㆍ성공회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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