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54) 씨는 지난해 7월 태풍 에위니아로 살던 집을 잃었다. 사흘간 계속된 집중호우에 계곡물이 넘쳐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재난은 오히려 이 씨에게 기회가 됐다. 사고를 당하기 사흘 전 면사무소 직원의 권유로 풍수해보험에 가입해둔 덕에 이 씨는 보험금 1,500만원을 받아 지금은 새로 지은 깨끗한 집에서 지내고 있다.
경남 남해에서 온실재배를 하는 김모(60) 씨도 올 3월 강풍으로 비닐하우스의 철제 파이프 기둥이 내려앉았지만 1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아 큰 부담 없이 수리를 마쳤다. 김 씨는 “설마 사고가 날까 싶어 평소 보험료 내기가 아까웠는데 보험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장마철이 다가온다. 매년 집중호우나 태풍 예보를 접할 때마다 우리 집만은 비켜가기를 바라며 가슴 졸였던 사람이라면 풍수해보험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풍수해보험은 태풍, 홍수, 호우, 강풍, 풍랑, 해일, 대설로 보험가입자 소유의 주택, 비닐하우스, 축사 등에 발생한 피해를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동부화재가 소방방재청과 함께 상품을 개발해 지난해 5월부터 단독 시범사업자로 판매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평소 보험료의 절반 이상을 지원해줘 보험료도 비교적 저렴하다. 동부화재에 따르면 전체 가입 건수의 90% 정도를 차지하는 주택 보험은 연간 보험료가 1만~1만5,000원 정도며 비닐하우스 보험은 10만~15만원 수준이다.
지난해 1차로 9개 지역에서 시범 판매되던 것이 올 3월부터는 서울 마포구를 비롯한 31개 지역으로 확대됐지만 아직 가입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경기 이천시 등 1, 2차 시범사업 17개 지역의 풍수해보험 가입대상자 40만4,224명 중 가입자는 5%(2만213명) 수준이며 3차 시범지역은 실적이 거의 없는 상태다.
가입률이 가장 높은 경남 창녕군도 13% 수준이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굳이 보험에 들지 않아도 재난관련법에 따라 국가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가입률 저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내년 전면 확대를 앞두고 소방방재청은 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주택의 경우 건축 면적에 관계없이 최대 보험금이 그 동안은 2,700만원이었지만 이를 보험 가입면적에 따라 보상토록 바꿨다.
또 온실(비닐하우스 포함), 축사의 경우, 기본적으로 피해가액의 70%까지 보상토록 보상비율을 높였다. 늘어나는 보험료 부담은 현행 49~65%인 정부의 보험료 지원비율을 58~65%로 올려 해결키로 했다. 보험료 내기가 더 어려운 기초생활수급자는 90%까지 보험료를 지원해 준다.
소유자뿐만 아니라 자식 등이 부모님을 위해 보험을 들어줄 수 있도록 풍수해보험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실제 경북 예천군은 고향을 떠난 자녀 800여 명에게 안내문, 보험가입 신청서 등을 발송해 가입을 유도하는 ‘효도 실천 풍수해보험 가입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은 천재지변으로 민간시설에 피해가 나면 직접 지원보다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보험을 통해 재해복구를 돕고 있다”며 “풍수해보험은 갈수록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재해복구 지원제도를 선진국형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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