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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경찰기자실이 뭔지도 모르고

입력
2007.06.0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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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이제부터 너는 기자다" 한마디를 받고 회사신분증을 들고 경찰서에 들어섰다. 형사계는 호통과 욕설로 가득찼다. 피의자인지 참고인인지 형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람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뭐 기사거리 없을까 하며. "당신 뭐야." "기잔데요." "아, 그러세요." 경찰과의 첫 대화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그 순간 그 공간에서 갑자기 호통과 욕설이 줄어들었음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 경찰감시ㆍ민원청취의 보루

바로 옆은 민원실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거나 담배를 팍팍 피워대는 사람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힘들지요." "…" "저도 분통이 터져요." 혼잣말처럼 두 마디만 하면 됐다.

10분이고 한 시간이고 이야기는 이어졌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신문지면에 올랐다. 형사계를 조금 조용하게 만들고, 민원실 앞을 조금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경찰서에 출현하는 기자의 막중한 업무다.

당시 금과옥조 같은 경구(警句)가 있었다. '경찰은 자기 아들이 기자라도 사건과 비리를 알려주지 않는다. 기자는 자기 아버지가 경찰이라도 사건과 비리를 찾아내 써야 한다.'

8월부터 일선 경찰서의 기자실을 없앤다 한다. 서울에는 31개 경찰서 가운데 지역별로 8곳에 기자실이 있다. 별도로 다른 8개 경찰서에 기자들의 '거점 공간' 비슷한 장소가 있다. 경찰청과 서울경찰청을 포함해 10개의 기자실과 8개의 거점이 있는데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두 곳에만 기자실을 둔다는 것이다.

기자에 입문하면 가장 먼저 담당하는 곳이 경찰서다. 그들을 '사스마리'라 부른다. 어원인 일본어 '사츠마와리'는 '찰(察)회(廻)'로, 경찰서를 돌아다닌다는 의미다. 힘들고 고단하여 하루종일 '가슴앓이'를 하기에 '사스마리'가 됐다.

그들의 본질과 존재는 취재(取材)다. '아들에게도 숨기는 사실'들을 캐내는 이유는 '아버지가 곤란하더라도' 써야 할 양심을 교육 받기 때문이다. 취재의 근본은 들어가서, 만나고, 캐묻고, 따지는 것이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 경찰의 업무를 최대한 덜 방해하는 균형으로 현재의 시스템이 정착됐다.

참여정부의 '기자실 선진화 방안'이 스스로 묘혈을 파고 있는 것임은 더 언급하지 않겠다. 칼자루를 쥔 줄 알고 휘둘러 대는 꼴이 가관일 따름이다. 한 가지, 국제언론인협회(IPI)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성명에 공감이 간다.

"이런 조치는 한국 정부가 뭔가 감출 것이 있다는 불기피한 인상을 심어줄 것"이라고 했다. '불가피한 인상'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며, '뭔가 감출 것이 있음(혹은 있었음)'이 명백하다.

선진화 방안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선진국에 우리 같은 경찰서 기자실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들이 선진국이어서 그러한 기자실이 없는 것이지, 기자실을 없애서 선진국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공무원이, 우리의 경찰이 선진국 그들의 공복인식에 반, 아니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간다면 호텔급 기자실을 설치한들 사용할 이유가 없다.

● 차라리 청와대기자실을 없애지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에서 경찰의 브리핑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것이었다. 브리핑만으로 1987년 6월항쟁이 가능했겠는가. 언론에 일정부분 공이 있다면 대부분은 사스마리들의 취재 덕분이었고, 밀착취재를 가능케 한 경찰서 기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참여정부의 계획대로 '정제되고 세련된' 경찰의 브리핑만 받아쓰라니 국민들은 신문에서 '탁, 억'만 읽으라는 주문이다. 한화그룹과 경찰 및 조폭이 연루된 사건 같은 것들이 앞으론 어떻게 보도되어야 한다는 신종 보도지침을 보는 듯 하다.

사스마리들은 무의미한 경찰 브리핑을 의미 있는 기사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가슴앓이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정부가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하는 목적이 그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혈이 아무리 급해도 목을 졸라 지혈을 할 순 없지 않은가. 국민 입장에서 필요와 효용을 따져 기자실 가운데 하나만 없앤다면 청와대 기자실이 될 것이며, 하나만 남긴다면 경찰서 기자실이 되어야 한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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