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해들은 어느 대기업 전략회의의 한 장면이다. 그룹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핵심 경영인들을 앞에 두고 법무팀이 막 브리핑을 시작한다. 회의실의 대형 스크린에 그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섬 모양의 골프장 17번째 홀이 비친다.
이어'로 해저드(Law Hazard)'라는 자막이 그린 주변의 물 위로 흐른다. 의아해 하던 핵심 경영인들이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워터 해저드(Water Hazard)를 '법률 위반지대'로 바꾼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골퍼가 공을 물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정교한 샷을 구사해야 하듯 경영인은 기업을 법률분쟁에 몰아넣지 않기 위해 위험요소를 치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공을 물에 빠뜨리면 벌타를 먹듯 기업을 분쟁의 위험지대로 몰고 간 경영에는 막대한 손실이 따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영시대를 맞은 지금 대외적 환경은 점점 더 국제적 규범과 규칙을 준수할 것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굳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국제적 규범과 규약, 교역 당사국의 각종 법률은 우리 기업을 촘촘히 얽매고 있다. 국제적 경영에 나선 기업들이 이미 법률 분쟁에 따른 막대한 비용 지출을 감수한 지도 오래다.
한국의 일류 기업인 삼성그룹이 지난해 국제적 법률 분쟁에 쏟아 부은 소송비용만 해도 707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국제 법규에 대한 무지와 일탈에 따른 위험이 더해지면 법률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미국의 반독점 위반에 걸려들면서 벌금과 합의금 등으로 수천억원에서 1조원 안팎의 비용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해저드에 빠질 때의 심각성을 예시하고 있다. 해외 근무 직원이 경쟁사 직원에게 이메일로 가격을 문의한 작은 실수가 담합 행위로 몰려 엄청난 법률 비용을 가져올 줄은 아무도 몰랐다.
눈을 나라 안으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과거 정경유착은 기업을 키우는 자양분이자 기업 부패의 보호막이었다. 권력자에게 가는 정치자금은 기업의 탈법을 적당히 용인해주는 보험금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전두환ㆍ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 사건 등 굵직한 경제 사건 수사를 거치면서 재벌기업의 총수라도 면죄부를 받기가 쉽지 않게 됐다.
따지고 보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매각 의혹 사건이나 지난해 현대ㆍ기아차 비자금 사건, 최근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 폭행 사건은 그룹의 총수들이 룰을 지키라는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이다.
변칙과 위법, 개인적 일탈 행위의 대가는 혹독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각각 8,000억원, 1조원의 개인재산 출연을 약속하고도 에버랜드 CB 헐값매각의혹 사건이나 기업 자금 횡령 혐의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식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혼내주겠다고 직접 보복 폭행에 나선 金승연 회장은 지금 감옥에서 법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기업이나 기업인들이 법의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답은 간단하다. 법을 지키는 경영뿐이다. 상품의 판매만이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국제적 법규에 무감각한 기업이나 법을 경시하는 기업인은 '로 해저드'에 빠진 만큼 고비용을 치러야 한다.
기업이 앞서서 법률 분쟁에 대비하고 기업인들이 준법경영의 원칙을 지킨다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다. 준법 경영이 곧 돈이 되는 세상이 우리는 살고 있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