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중국 화물선과 충돌한 골든로즈 호 침몰사고에 사회가 일제히 분기(奮起)하는 듯 하더니, 어느덧 크게 관심 두지 않는 모습이다. 대신 정부의 브리핑룸 통폐합 조치를 둘러싼 논란이 언론과 사회를 격앙시켰다.
한바탕 거친 논쟁이 휩쓴 뒤 서로 욕하고 응수하고 관전하는 것도 시들해질 무렵, 이번에는 대통령이 진두에 나서 야당 대선주자를 비롯한 적진에 4시간 반 '말 폭탄'을 퍼부었다.
● 안팎으로 적대적 편가르기
이 것으로 나라가 온통 적대적 다툼에 매달리는 형국이 이어질 조짐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이 모든 게 과연 진정한 갈등에서 비롯됐는지, 아니면 애써 적대할 상대를 찾고 싸울 빌미를 만드는 탓인지 살필 필요가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 논란은 일단 멈추고,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언론이든 저마다 정상적 심리와 건전한 이성을 간직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자는 것이다.
공연히 쟁점과 전선을 흐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 조치는 지켜보는 국민이 더러 과도하다고 느낄 만치 언론이 충분히 비판했다. 새삼 거들고 덧붙일 게 없다.
다만 언론이 국정 보도를 거부하기로 담합하지 않는 한, 헌법재판이나 정부교체를 기다리는 것 밖에 뚜렷한 방책이 없다. 이를 미리 간파한 정부를 상대로 마냥 다투는 것은 국민의 염증을 불러 정부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충직한 지지세력만 모인 무슨 '포럼'에서 쏟아낸 발양성(發揚性) 자기평가와 적진 융단폭격도 그러려니 웃어넘기는 게 상책이 아닐까 싶다.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무대 출연을 원천 봉쇄하거나 입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여권의 대선 채비가 늦어 막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몸소 무대에 올라 관객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헌신적 행동으로 보아 크게 탈 날 것도 없다. 그게 책략을 무력화하는 방도일 수 있다.
세상이 격동하는 마당에 뒷짐지고 그저 냉소나 날리자는 말이 아니다. 먼 바다의 우발적 선박 침몰사고나 은밀한 각본에 따른 정치사건을 가림 없이, 온 사회가 순식간에 몰입했다가 이내 다른 이슈에 매달려 악다구니 치는 데서 벗어나는 게 좋겠다는 뜻이다.
특히 나라 안팎 이슈마다 사리와 원칙, 법과 규범에 충실하게 판단하기보다 먼저 선과 악, 우군과 적(敵),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로 편을 나눠 규정하는 어리석음을 반성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이런 맥락에서 골든로즈호 사고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언론과 사회는 우리 배가 침몰하고 선원들이 숨진 것에 대뜸 우리 쪽을 피해자, 중국 쪽을 가해자로 규정했다.
특히 중국 배가 인명구조 의무를 외면한 채 '뺑소니'친 의혹과 중국 해사당국이 신속한 구조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듯한 흔적에 중국인과 중국의 본질적 악덕을 욕하고 꾸짖었다. 이어 여기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은 정부의 정체성을 새삼 문제 삼았다. 심지어 미군 장갑차 사건을 빌미로 '반미'는 하면서 왜 '반중'은 하지 않느냐고 시비한 언론인도 있다.
● '정상적 심리' 회복 노력해야
그러나 우리 해양안전심판원의 현장조사에서 확인되듯, 애초 전문적 안목에는 양쪽 모두 무중(霧中) 항해규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됐다. 어느 쪽 과실이 더 큰지는 과학적 조사로 밝혀질 것이라고 한다.
'뺑소니' 의혹도 두 선박과 중국 해사당국의 지상통제센터에 설치된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기록을 정밀 분석하면 가려낼 수 있다.
이 장치는 선박 이름과 소속, 화물, 항로, 속도, 변침 등 모든 정보를 자동으로 발신하고 기록한다. 따라서 중국 배가 사고를 숨기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이를 종합하면, 적어도 중국 당국이 구조와 진상 규명을 악의적으로 기피한 흔적은 없다.
불행한 사태에서 중국을 편들려는 것이 아니다. 안팎으로 적을 찾아 사생결단할 듯이 다투는 습관이 사회와 국가에 이로울 게 없다는 것을 깨닫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가 '정상적 심리'를 회복해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