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저가항공 진출을 선언했다. 항공사 설립 규제 완화, 오픈 스카이(양국간 무제한 취항허용) 제도 등으로 저가항공사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자 초강수를 둔 것이다.
항공업계에 미칠 파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제선 진출을 꾀하는 제주항공과도 경쟁해야 하고, 아시아나 항공과도 노선분배를 둘러싼 마찰이 치열해지게 됐다. 대한항공은 프리미엄항공과 저가항공,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 아시아 항공업계 최강자로 서겠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은 4일 "수 년 전부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저가항공사 설립타당성과 진출방안을 검토해왔다"며 "부정기 항공운송사업 경험을 가진 계열사(한국공항)를 내세워 2~3년 내에 저가항공사를 설립키로 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우선 마진율이 적은 국내선에 투입하고, 관광수요가 많은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노선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한ㆍ중ㆍ일의 김포-홍차오-하네다간 '3각 셔틀'이 올해 말에 실현되고, 제주항공도 국제선 취항에 총력전을 펴고 있어 더 이상 저가항공사 설립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중국과 동남아 지역 저가 항공사들이 한국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더 이상 방어적 태도로는 시장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국제선 진출이 당장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건설교통부가 국제선 운항조건을 국내선 운항경험 3년으로 제한할 기류를 보이고 있기 때문. 대한항공이 2년내 항공사를 설립하더라도, 국제선 취항은 일러야 2012년이나 돼야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한항공은 기존 저가항공사와 차별화를 위해, 항공기를 중소형 제트기인 B737기종을 도입키로 했다. 이 항공기는 160~190인승으로 지금도 국내선 및 단거리 국제선에 띄우고 있다.
김영호 대한항공 여객담당 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비 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저가항공사=불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겠다"며 "기존 항공을 통해 고급 상용수요를 흡수하고, 신설되는 저가항공사는 중장거리 관광노선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윈-윈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기존 항공사들의 저가항공시장 진출은 추세처럼 되어가고 있다. 일본항공(JAL)도 자회사인 'JAL익스프레스'를 통해 저가항공기를 띄우고 있으며, 전일공수(ANA)도 저가항공 자회사인 '에어 재팬'을 두고 있다.
싱가포르의 저가항공사인 '타이거 에어 웨이즈'는 싱가포르항공의 자회사이며, '오스트레일리언 에어'도 호주최대 항공사인 콴타스의 자회사이다.
대한항공의 저가항공 진출로 국내 항공업계에도 큰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우선 중ㆍ단거리 노선에 집중된 아시아나항공은 텃밭인 중국, 일본 시장을 두고 대한항공과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특히 최근 중국과 오픈 스카이 제도를 맺으면서 양국이 항공기를 무제한으로 띄울 수 있게 됨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대결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우리도 내부적으로 저가항공사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2~3년의 기간이 남아있으니 그동안 대한항공의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에도 불똥이 튀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 설립이 국제선 진출을 노리는 제주항공을 겨냥한 흔적이 짙다"며 "거대한 자본력과 노하우를 앞세워 밀어붙일 경우 버거운 경쟁상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에도 저가항공사 시장점유율이 20%를 달하는 등 세력이 급상승하고 있다"며 "앞으론 메이저급 항공사들의 저가항공 진출은 불가피한 추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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