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날려버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배’라는 이름으로 사상 첫 전국여자야구선수권대회 경기가 열린 3일 오전 서울 장충 리틀야구장. 1회초 공격이 시작되자 방문 팀 로얄패밀리(대구)의 덕아웃이 들썩인다.
전광판은 흡사 핸드볼 경기 스코어 같다. 로얄패밀리가 1회에만 홀릭스(부산) 선발 김민희를 상대로 뽑아낸 점수는 9점. 첫 공수교대까지 20분이 걸렸다. 안타는 4개였지만 4사구 3개에 수비 실책이 5개나 나왔다.
아직은 동호회 수준에 불과하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자 선수들 못지않다. 지방 팀에 할당된 경비는 팀당 30만원. 왕복 버스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자비를 들여 4~5시간을 마다 않고 상경했다.
사연도 제각각이다. 부산 올인 팀의 유현정(46)씨와 딸 배수영(16)양은 여자야구단 모녀 선수이고, 51세의 최고령 선수인 박형옥씨는 야구가 하고 싶어 나주대에 입학해 정규 멤버가 된 케이스다. 수(서울)의 최미자(28)씨는 야구를 하기 위해 주말마다 경북 봉화의 벽지 집에서 서울까지 왕복한다. 외야 담장에 걸린 한 플래카드의 문구처럼 ‘야구에 산다’는 그들이다.
사실 홀릭스도 이날 정상적인 경기를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대회를 이틀 앞두고 두 명의 선수가 잇달아 부친상을 당해 라인업을 꾸릴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출산으로 1년간 쉬었던 허신정씨를 급히 서울로 호출해 9명만으로 경기를 강행했다.
방망이는 자꾸 헛돌고, 공을 던지면 허공을 가르기 일쑤지만 얼굴은 해맑기만 하다. 홀릭스에도 반격의 기회는 찾아왔다. 0-14로 끌려가던 4회말 안타 6개 등으로 대거 8점을 뽑아내 6점차로 따라 붙은 것.
결국 경기는 대회 시간 규정인 1시간45분을 살짝 넘겨 로얄패밀리의 19-11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승패의 희비가 교차하는 것도 잠시다.
홀릭스의 위선미씨는 “이겼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승패를 떠나 즐거웠다”고 만족스러워했고, 로얄패밀리의 김세인 감독은 “흙이 아니라 그라운드에서 경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경비 문제가 아쉽지만 야구할 수 있는 장이 많아져서 즐겁다”고 자평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야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그들만의 리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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